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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정상회담에 정장 착용, 과거 청나라·영국에서 배운 의전의 정치학

by JWS 2025. 8. 20.

백악관에 블랙슈트를 입고 나타난 젤렌스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두 번째 백악관 방문에서 검은 셔츠와 재킷의 군복 느낌 정장을 선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메시지를 보였다. 2월 군복 차림으로 방문했을 때 트럼프로부터 빈정거림을 듣고 회담이 험악해졌던 전례를 의식해 복장을 조정했다. 회담 전 미·우크라 측이 복장 문제를 사전에 논의했고, 미국 측이 정장 착용을 우회적으로 요청했다는 후일담이 나온다. 당일 트럼프와 기자들이 젤렌스키의 차림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며 분위기 전환을 이끌고, 젤렌스키는 감사 인사를 거듭하고 멜라니아 여사에게 친서를 전달하며 예우를 보였다.

트럼프도 면박 대신 배려하는 태도를 보이고, 지난 회담에서 공격 포문을 열었던 JD 밴스 부통령 역시 공개 언급을 자제했다. 젤렌스키는 전날까지 군복을 고수했으나 미 회담에 맞춰 복장을 바꿔 상징 신호를 조정했다. 전반적으로 의전과 복장을 활용해 회담 톤을 부드럽게 만들고 정치적 신호 충돌을 줄이려는 계산이 읽힌다. 이는 과거 영국 사절단과 청나라가 의전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외교가 결렬된 사례와 대비되며, 외교에서 ‘옷차림과 예법’이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좌)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청나라 의전 방식에 저항한 영국 사절단

1793년 매카트니 사절단의 중국 방문은 동서양 문명 간의 첫 번째 본격적인 외교적 접촉이었으나, 근본적으로 다른 외교관념의 충돌로 인해 실패로 귀결되었다. 갈등의 핵심은 청나라의 전통적인 조공 체제와 서구식 대등 외교의 충돌이었으며, 이는 구체적으로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 의식과 조정 복장 문제로 표면화되었다. 청조는 중화사상에 기반한 천하질서 하에서 모든 외국 사절을 황제의 신하로 간주했다. 따라서 영국 사절단에게도 전통적인 삼궤구고두, 즉 세 번 꿇어앉아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을 요구했다.

이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청나라를 상국으로, 영국을 속국으로 인정하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반면 매카트니를 비롯한 영국 사절단은 이러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들은 영국이 청나라와 동등한 주권국가라는 입장에서 자국 국왕 앞에서 취하는 의전, 즉 한쪽 무릎만 꿇는 예를 고수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는 근대 서구의 주권 평등 원칙에 기반한 것이었다. 알현 당일의 상황은 양측의 기록에서조차 엇갈리게 나타난다. 매카트니는 사전 조율에 따라 한쪽 무릎만 꿇었다고 주장했으나, 중국 측 기록에는 영국 사절단이 두 무릎을 꿇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의 차이 자체가 양국 간 인식의 격차를 보여준다. 영국 사절단이 영국식 정장을 그대로 착용한 것 역시 청나라의 예법을 무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건륭제는 결국 매카트니 사절단의 모든 외교적·통상적 요구를 거절했다. 영국이 요구한 상주 공사관 설치, 추가 통상항 개방, 관세 인하 등의 제안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협상은 완전히 결렬되었고, 영국 사절단은 성과 없이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영국 사절단 청나라 건륭제에 인사하는 장면


장기적인 역사적 파장

이 의전 갈등은 단순한 예의 문제를 넘어서 동서양 간의 근본적인 세계관 차이를 드러냈다. 청나라는 여전히 중화사상과 조공 체제의 틀 안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반면, 영국은 이미 근대적 국제법과 주권 평등의 원칙에 기반하여 외교를 추진하고 있었다. 매카트니 사절단의 실패는 영국으로 하여금 무력을 통한 문호 개방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평화적 외교로는 중국 시장 진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영국은 이후 아편 무역을 확대했고, 이는 결국 1840년 아편전쟁으로 이어졌다. 청나라 입장에서도 이 사건은 서구 세계의 도전에 대한 첫 번째 경험이었다. 하지만 당시 청조는 여전히 자신들의 문명적 우월성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경직된 자세는 이후 반세기 동안 계속되었고, 결국 서구 열강의 침입을 막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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