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도시 뉴욕에 최초 무슬림계 시장 탄생하다
인도계 무슬림이자 30대 진보 정치인 조란(조흐란) 맘다니(34) 뉴욕주 하원의원이 뉴욕시장 선거에서 승리해 뉴욕시 첫 무슬림 시장이 됐다. AP통신은 동부시간 밤 9시37분께 개표 초반 승리를 예측·보도했으며, 이후 맘다니 측이 승리를 확정했다. 맘다니는 6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제치며 본선 후보가 됐고, 본선에선 무소속 쿠오모·공화당 커티스 슬리워와 3자 구도를 형성했다. 그는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 임대료 동결, 최저임금 인상, 무상버스·무상보육 확대 등 생활비 경감 공약을 앞세웠다. 재원은 부유층 증세로 마련한다는 방침으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등 민주사회주의 성향 진영의 지원을 받았다.
재계·공화당은 ‘좌파 포퓰리즘’이라 비판했고 민주당 중도파도 급진성을 우려했으나, 생활비 위기 대응 공감대 속에 일부 중도 지도부가 막판 지지로 돌아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반(反) 맘다니’ 단일화를 촉구하며 당선 시 뉴욕시 연방자금 중단을 경고해 향후 갈등을 예고했다. 이번 승리는 뉴욕 정치의 세대·이념 지형 변화를 상징하며 무슬림·이민자 대표성 확대라는 의미를 지닌다. 맘다니는 “정치 기득권을 넘어 시민 생활비를 낮추는 시정”을 약속했다. 향후 임대료·교통·보육 재원조달을 둘러싼 시의회·주·연방과의 협치가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 과거 중세 이탈리아에서는 코민이라는 독특한 체계에서 귀족 출신이 아닌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 대표로 선출된 사례가 있었다.

북부 이탈리아의 독특한 정치 체계 코뮌
11세기부터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코뮌이라는 독특한 정치 체계가 등장했다. 코뮌은 도시민들이 스스로 자치권을 획득하고 대표를 선출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주민 자치 공동체였다. 이는 전통적인 봉건 영주나 귀족의 지배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였다. 코뮌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권력의 중심이 전통 귀족에서 상공업자 계층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12세기에 들어서면서 상인과 수공업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고 규제하기 위해 동업조합, 즉 길드를 조직했다. 이 길드들은 단순한 경제 단체를 넘어 도시의 행정과 정치 운영에 깊이 관여하며 실질적인 권력 집단으로 성장하며, 경제적 부를 축적한 상공업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들은 도시의 법률 제정, 행정 집행, 외교 관계까지 장악하며 도시 정치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중세 유럽에서 보기 드문 현상으로, 귀족 중심의 봉건 질서가 자본과 경제력을 가진 신흥 계급에 의해 대체되는 사회경제적 대전환을 의미했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미켈레 디 란도
미켈레 디 란도는 중세 이탈리아 코뮌 역사에서 가장 이색적인 배경을 가진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채소 장사를 하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자신도 양모를 손질하는 카드 일을 하던 평범한 노동자 출신이었다. 당시 피렌체 사회에서 이러한 하층 노동자가 도시의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1378년, 피렌체에서 치옴피 반란이 일어났을 때 미켈레 디 란도는 이 봉기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치옴피는 양모 공장의 최하층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이들은 길드에도 가입하지 못한 채 극심한 빈곤과 차별 속에 살고 있었다. 미켈레는 이들을 규합하여 기존 지배 세력에 저항했고, 결국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권력을 잡은 미켈레 디 란도는 하층민을 위한 개혁에 착수했다.
그는 노동자들의 부채를 탕감하고 세율을 인하했으며, 소규모 길드와 노동자들의 권익을 반영하는 코뮌 내각을 구성했다. 이는 중세 도시 정치사에서 서민 계층이 직접 정치 권력을 행사한 매우 드문 사례였다. 하지만 미켈레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급진파와 온건파로 내부가 분열되면서 개혁 운동의 동력이 약화되었고, 기득권을 잃은 상층 시민과 대 길드 계층의 반격이 거세게 일어났다. 결국 1382년 미켈레의 정권은 무너졌고, 그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는 운명을 맞이했다.비록 그의 통치는 단명했지만, 미켈레 디 란도가 남긴 유산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는 피렌체 사회 저변에 서민 계층도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노동자 권리 의식을 확산시켰다. 그의 반란은 이후 피렌체를 비롯한 여러 이탈리아 도시에서 신흥 시민 계급과 노동자 계층이 정치 참여를 모색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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