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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팔란티어 고졸 채용, 오스만 ‘엔데룬’의 능력주의를 떠올리다

by JWS 2025. 11. 19.

고졸자를 뽑는 미국 일류 대기업 팔란티어

미국 데이터 분석기업 팔란티어가 대학 졸업장 대신 실무 역량을 본 ‘고졸 펠로십’ 채용을 시작해 주목받고 있다. 회사는 올가을 10대 고교 졸업생 22명을 월 5400달러를 주는 4개월 펠로로 선발, 교육·멘토링 후 고객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성과 우수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1200명 가까이 지원할 만큼 관심이 컸으며, 일부는 아이비리그 합격을 포기하고 합류했다. 팔란티어는 공고문에서 “대학은 고장 났다”며 능력주의 약화를 비판, 학위보다 실행 역량을 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알렉스 카프 CEO와 공동창업자 피터 틸은 오랫동안 대학의 비효율을 지적해 왔고, 틸은 ‘틸 펠로십’으로 대학 대신 창업을 권장해 왔다. 펠로십 1기는 4주 세미나를 마치고 병원·보험·방산·정부 등 고객 과제에 배치됐으며 임원진은 “몇 주 만에 성과 격차가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정규직 전환 여부는 11월 결정된다. 한편 오픈AI·애플·IBM 등 빅테크도 직무별로 학력 요건을 축소하는 등 채용의 학위 의존도가 낮아지는 추세다. 학위 무력화 논쟁과 함께 ‘현장 중심’ 인재 선발이 확산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제도 성공을 위해 멘토링 퀄리티, 윤리·보안 교육, 장기 커리어 사다리 설계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오스만 집현소 세상 최고의 교육기관 엔데룬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심장부, 톱카프 궁전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진보적인 교육기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엔데룬'으로 불리는 궁정 내부 학교였다. 이곳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제국을 이끌어갈 최고 엘리트를 양성하는 시스템 그 자체였다. 엔데룬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학생 선발 방식이었다. 당시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왕국과 제국은 귀족 가문 출신만이 고위 관료가 될 수 있었다. 혈통과 가문이 모든 것을 결정했고,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져도 평민은 권력의 중심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엔데룬은 '데브쉬르메'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해 학생을 선발했다. 제국 내 기독교 농가의 소년들 중에서 신체적, 지적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출신 지역, 민족, 계급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발칸 반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든, 아나톨리아의 목동이든, 오직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만이 선발 기준이었다. 선발된 소년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톱카프 궁전 내부의 엔데룬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더 이상 자신의 고향이나 가족과 연결되지 않았다. 오직 오스만 제국과 술탄에 대한 충성만이 그들의 정체성이 되었다. 이는 의도된 설계였다. 기존 귀족 가문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오직 능력으로만 평가받는 새로운 엘리트 계층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엔데룬 학생들은 수년간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 행정, 군사, 학문, 예술에 걸친 다양한 분야를 학습했고, 특히 실무 중심의 교육이 강조되었다. 단순히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정 문서를 다루고, 군사 전략을 실습하고, 외교 협상을 연습했다. 궁전 내 주요 관료와 장관들이 직접 멘토가 되어 학생들을 지도했고, 학생들은 이들의 실무를 보조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경쟁은 치열했다. 동료들은 모두 제국 전역에서 선발된 최고의 인재들이었고, 이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야만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우수한 학생들은 졸업 전에도 실제 행정과 군사 실무에 임명되어 즉시 실전 경험을 쌓았다. 이는 단계적으로 책임을 늘려가며 리더십을 키우는 체계적인 경력 사다리였다.

이 시스템의 결과는 놀라웠다. 엔데룬 출신 졸업생들은 비 이슬람계, 비 터키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최고위직에 올랐다. 술탄의 최측근 참모, 각 지방의 총독, 군대의 최고 지휘관, 심지어 제국의 실질적 행정 수반인 대재상(그랜드 비지어)까지 상당수가 엔데룬 출신이었다. 발칸의 기독교 농가 출신 소년이 20년 후 제국을 통치하는 대재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으로 번영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 엔데룬 시스템이었다. 능력 있는 인재를 출신과 무관하게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실무에 투입하는 이 혁신적 시스템은 동시대 어떤 국가도 따라올 수 없는 오스만 제국만의 경쟁력이었다.


오스만 집현소가 최고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엔데룬이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은 철저한 능력주의였다. 당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원칙은 혁명적이었다. 유럽의 왕국들은 귀족 가문 출신만이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고, 중국의 과거제도는 형식적으로는 능력주의였지만 실제로는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인도의 무굴 제국이나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 역시 혈통과 가문이 중요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이 모든 것을 무시했다. 심지어 제국의 지배 민족인 터키인보다 정복당한 기독교 지역 출신을 더 선호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기존 권력 구조나 가문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았고, 오직 술탄에게만 충성했기 때문이다. 이는 극도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귀족 가문 출신 관료들은 가문의 이익을 우선시하거나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엔데룬 출신들은 술탄이 만들어준 신분 상승 사다리에 전적으로 의존했기에 절대적 충성을 보였다.

두 번째 비결은 실전 중심의 교육 방식이었다. 엔데룬은 이론과 실무를 완벽하게 결합했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행정 이론을 배운 후 즉시 실제 행정 문서를 작성하고 처리했다. 군사 전략을 공부한 후에는 실제 군사 훈련에 참여했다. 외교 예절을 익힌 후에는 외국 사절단 접견에 참석했다. 이는 현대의 인턴십이나 현장 실습을 수백 년 앞선 교육 방식이었다.특히 멘토링 시스템이 탁월했다. 학생들은 현직 고위 관료들과 함께 일하며 직접 배웠다. 대재상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제국 운영의 핵심을 배우고, 군사 지휘관의 참모로 전쟁터를 경험했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경험과 판단력의 전수였다.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정치적 감각, 위기 대응 능력, 리더십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었다.

세 번째 비결은 치열한 경쟁과 명확한 승진 경로였다. 엔데룬에는 낙하산이나 연줄이 통하지 않았다. 모든 학생이 제국 전역에서 선발된 최고의 인재들이었고, 이들 사이의 경쟁은 극도로 치열했다. 하지만 이 경쟁은 공정했다. 평가 기준은 명확했고, 성과는 투명하게 인정받았다. 우수한 학생은 빠르게 승진했고,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 20대에도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다. 또한 엔데룬은 단순히 관료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스만 엘리트 문화'를 창조했다. 학생들은 터키어, 페르시아어, 아랍어를 배우며 제국의 다문화적 특성을 체화했다. 시와 음악, 예술을 익히며 교양을 갖췄다. 궁정 예절과 외교 매너를 숙달하며 국제적 감각을 키웠다.이들은 졸업 후 단순한 관료가 아니라 제국을 대표하는 세련된 엘리트가 되었다.

네 번째 비결은 제도의 지속성과 발전이었다. 엔데룬은 한두 세대의 실험이 아니라 수백 년간 지속되며 계속 개선되었다. 시대가 변하며 교육 내용도 업데이트되었고,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계속 추가되었다. 포병술이 중요해지면 포병 교육이 강화되었고, 외교가 복잡해지면 언어 교육이 확대되었다. 이는 살아있는 시스템이었다. 결과적으로 엔데룬은 혈통이 아닌 능력, 이론이 아닌 실전, 특권이 아닌 경쟁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초의 현대적 엘리트 양성 시스템이었다. 이는 수백 년 후 등장할 프랑스의 그랑제콜, 영국의 옥스브리지, 미국의 아이비리그보다 훨씬 앞선 능력주의 교육 모델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수백 년간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이 놀라운 인재 양성 시스템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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