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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지방대 수시 지원자 급증, 조선 후기 서원이 성균관을 대체했던 이유

by JWS 2025. 9. 24.

저년대비 10%늘어난 지방대 수시 지원자

2026학년도 수시에서 지방대 지원자가 전년 대비 10% 넘게 늘며 전국 평균 경쟁률이 9.77대 1로 소폭 상승했다. 종로학원 집계 기준 모집 26만여 명에 254만여 명이 지원했고, 지방권 110개 대학 지원자가 10만4천여 명(10.2%) 증가했다. 대구·경북권(12.4%), 강원권(11.7%), 충청권(10.6%) 등 다수 권역에서 증가가 두드러졌다. 반면 서울권 증가는 2.1%, 경인권은 0.1%에 그치며 수도권 쏠림이 다소 둔화됐다. 평균 경쟁률은 서울권 18.83, 경인권 13.02, 지방권 6.49대 1이며 지방권 6대 1 미만 대학 수가 68개에서 53개로 줄었다. 지방권 상위 경쟁률은 경북대 14.51대 1, 단국대(천안) 11.1대 1, 충북대 10.90대 1 등이었다. 전형별로는 아주대 약학과 논술(자연) 708.2대 1, 국민대 경영 논술(인문) 321.6대 1이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국 최고 경쟁률 대학은 성균관대(32.49대 1)로, 한양대·중앙대·서강대 등이 뒤를 이었다. 임성호 대표는 경기 불황과 의대 정원·탐구 과목 변동 등 입시 불확실성이 겹치며 ‘집 가까운 대학·안정 지원’이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9월 모의고사를 치르고 있는 고3 학생들


향교 서원 성균관을 대체할 교육기관으로 성장하다

조선 후기 교육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는 향교와 서원이 단순한 보조 교육기관에서 성균관을 대체할 수 있는 독립적인 교육 중심지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 전기의 중앙집권적 교육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놓았으며, 지방 교육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조선 전기에는 성균관이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과거시험 준비와 유학 교육의 핵심은 모두 한양에 집중되어 있었고, 향교와 서원은 성균관 진학을 위한 예비 교육기관 정도의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지방의 선비들은 진정한 학문을 하고 과거시험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한양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구조가 급격히 변화했다. 특히 서원의 경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같은 대학자들의 학문적 권위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교육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들 서원은 단순히 성균관의 교육 과정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학문적 전통과 특색을 살린 고유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경상도, 특히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원의 밀집 현상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산서원, 병산서원, 옥산서원 등은 각각 독특한 학풍과 교육 방식을 발전시켰다. 이들 서원 출신들이 과거시험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면서 서원 교육의 우수성이 입증되었다. 이는 성균관만이 최고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기존 관념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서원과 향교의 교육 내용도 점차 전문화되고 심화되었다.

성균관에서 제공하는 경전 해석과 문장 작법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행정 실무, 지역사 연구, 향촌 사회의 현실 문제까지 포괄하는 종합적 교육이 이루어졌다. 특히 서원의 '자율·자치·자기주도 학습' 문화는 성균관의 획일적이고 경직된 교육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인적 네트워크의 측면에서도 지방 교육기관들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지방 명문가와 사족 출신의 저명한 학자들이 서원의 원장이나 강사로 활동하면서, 이들 기관은 성균관에 뒤지지 않는 수준 높은 교육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들 지방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제관계와 동문 네트워크는 때로는 성균관 출신들의 네트워크보다 더 견고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방 교육기관들이 생원·진사시라는 과거시험의 첫 관문에서 매우 우수한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들 기관의 교육 수준이 성균관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지방에서 교육받은 선비들이 과거시험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굳이 한양까지 가서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도산서원 내부 일부모


경제적 요소 고려해 한양 가는 길 대신 지방 서원에 머무르다

조선 후기 교육 패턴의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경제적 현실이었다. 한양에서의 유학 생활은 지방 선비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을 지웠고, 이러한 현실적 제약이 지방 교육기관으로의 선택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한양 유학의 경제적 부담은 다층적이었다. 우선 장거리 이동에 따른 교통비가 상당했다. 조선시대의 교통 수단과 도로 사정을 고려할 때, 지방에서 한양까지의 여행은 시간과 비용이 모두 많이 드는 일이었다. 특히 영남이나 호남 같은 먼 지역 출신들의 경우, 한 번의 왕복 여행비만으로도 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더 큰 문제는 한양에서의 장기 체류비용이었다. 성균관 기숙사나 사설 숙소의 비용은 지방의 물가에 비해 매우 높았고, 특히 식비와 생활용품비는 지방의 몇 배에 달했다. 많은 선비들이 과거시험 준비를 위해 수년간 한양에 머물러야 했는데, 이 기간 동안의 생활비는 중소 지주 가문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과거시험의 불확실성은 이러한 경제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합격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시험에 실패할 경우 그동안의 투자비용이 모두 매몰비용이 되어버렸다. 특히 생원·진사시에 계속 낙방하는 경우, 가문의 경제적 기반이 크게 흔들릴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문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이었다.

반면 지방 서원에서의 학습은 경제적으로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원이나 향교를 이용하면 교통비와 숙식비를 대폭 절약할 수 있었다. 많은 경우 집에서 통학하거나 단기간의 기숙 생활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생업과의 병행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지방에 머물면서 학습하는 선비들은 농번기에는 농사일을 돕고, 농한기에는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방식으로 학업과 생계를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경제적 자립성을 보장하면서도 학문적 성취를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지방 교육기관들도 이러한 경제적 현실을 고려한 제도를 마련했다. 서원의 동재·서재(기숙사)는 성균관에 비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지역 유력 가문들의 후원으로 장학금 성격의 지원도 제공되었다. 또한 지역 농산물이나 현물로 학비와 생활비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아서 현금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리스크 분산의 관점에서도 지방 교육 선택은 현명했다. 만약 과거시험에 실패하더라도 지방에서는 서원 강사, 향교 교수, 문중 훈장 등의 대안적 진로가 있었다. 또한 지역 사회에서 형성된 인맥과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기회를 찾을 수도 있었다.

이는 한양에서 실패할 경우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험과는 대조적이었다.
특히 가문의 경제적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지방 교육 선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한양 유학으로 인한 과도한 지출은 가문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었지만, 지방에서의 적정 수준의 교육 투자는 가문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인재 양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경제적 고려는 결과적으로 조선 후기 교육 생태계의 다변화와 분권화를 이끌었다. 한양 중심의 단일한 교육 체계에서 벗어나 지역별로 특색 있는 교육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이는 조선 후기 지방 문화의 발달과 사족 사회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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