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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국대출신 빙상코치 피습, 법과 정의의 간극

by JWS 2025. 9. 22.

법은 피의자를 용서했으나 피해자는 용서하지 않았다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전 국가대표 출신 40대 남성 코치 B씨가 옛 여성 제자 A씨(30대)에게 흉기 습격을 당해 얼굴·목을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전했다. A씨는 고교 시절 B씨에게 지도를 받았고 당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B씨는 2014년 대한빙상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받았으나 형사에선 강간·상해 혐의 불기소, 특수폭행 등으로 약식벌금 300만원 처분을 받았다.

이후 연맹 징계가 법원 판단에 따라 3년 자격정지로 변경되었고, B씨는 개인 지도 형태로 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는 ‘자격정지 1년 이상이면 영구 지도 불가’ 규정이 당시엔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A씨를 특수상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한 뒤 응급입원 조치하고 구체 경위를 조사 중이다. 사건은 과거 성폭력 의혹의 처리와 체육계 징계·복귀 절차의 적정성, 피해자 보호 체계의 한계를 둘러싼 논란을 재점화되고 있다. 또한 불기소·경징계 이후 피의자·피해자 서사가 지속 충돌하며 ‘사적 보복’으로 비화한 점이 사회적 파장을 키웠다. 고대 지중해에서도 법적인 판결에 앞서 자신 스스로가 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리시아스 이야기를 알아보자.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사진=뉴시스


명예와 아내의 순결을 중요시한 고대 지중해 사회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남성의 '명예'는 단순한 개인적 가치관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였다. 특히 고대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사회에서 남성의 명예는 가족 구성원, 특히 아내와 딸들의 성적 순결과 직결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에우필레토스의 에라토스테네스 살해 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고대 아테네 사회에서 남성의 명예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개념이었다. 그것은 개인의 용기, 지혜, 덕성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의 행동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사회적 평판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이 자신의 가족, 특히 여성 가족 구성원들을 적절히 통제하고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내의 간통은 단순히 개인적인 배신행위가 아니라 남편의 무능력과 무력함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치명적인 수치였다. 아내의 성적 순결에 대한 강조는 고대 그리스의 혼인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결혼은 개인적 감정보다는 가문 간의 정치적, 경제적 연합의 성 격이 강했고, 아내의 순결은 혈통의 순수성과 재산 상속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였다. 따라서 아내의 간통은 남편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가문 전체의 명예와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건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간통에 대한 사적 응징은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아테네 법은 간통 현장에서 피해 남성이 간통자를 즉시 처단하는 것을 제한적으로 허용했고, 시민들도 이러한 행위를 명예로운 자기보호 행위로 받아들였다. 이는 국가권력이 개입하기 전에 개인이 직접 정의를 실현하는 자력구제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아테네 명 웅변가 중 한명인 리시아스 조각상


아내 간통범을 죽이고 명예 살인이라 말한 리시아스

리시아스(Lysias)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변론가 중 한 명으로, 에우필레토스를 변호하기 위해 작성한 "에라토스테니스 살해를 변호"하며는 고대 수사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변론문에서 리시아스는 단순히 의뢰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에우필레토스의 행위가 왜 정당하고 명예로운 것인지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논증했다. 리시아스의 변론 전략은 매우 정교했다. 그는 먼저 에우필레토스를 선량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그렸다. 에우필레토스는 아내를 사랑하고 신뢰했으며, 간통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격정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신중하게 대응했다고 묘사했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살해 행위가 계획적 범죄가 아니라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른 응징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리시아스는 특히 아테네의 법과 관습에 대한 해석을 통해 에우필레토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그는 아테네 법이 간통 현장에서의 즉시 응징을 허용하고 있으며, 이는 개인적 복수가 아니라 사회 질서를 지키기 위한 공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만약 에우필레토스가 이러한 상황에서 행동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법을 어기는 것이며,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논증했다. 변론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리시아스가 '명예 살인'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에우필레토스의 행위를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응징'으로 규정했다. 이때 명예는 개인적 감정이나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아테네 시민 공동체의 도덕적 기초를 지키는 공적 가치로 제시되었다.

리시아스는 또한 에라토스테네스의 행위가 단순한 개인적 불륜이 아니라 아테네 사회 전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는 만약 이러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아테네의 모든 가정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며, 사회의 도덕적 기초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통해 그는 에우필레토스의 개인적 행위를 사회 전체를 위한 공적 행위로 승화시켰습니다.

변론문의 또 다른 특징은 리시아스가 감정에 호소하는 기법을 절묘하게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배신당한 남편의 고통과 분노를 생생하게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에우필레토스가 법과 관습에 따라 이성적으로 행동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감정과 이성의 조화는 청중들로 하여금 에우필레토스에게 동정심을 느끼면서도 그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전략이었습니다.

리시아스의 변론은 또한 고대 아테네의 법적 사고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성문법뿐만 아니라 관습법과 사회적 합의까지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법'을 근거로 논증을 전개했습니다. 이는 고대 아테네에서 법이 단순한 조문이 아니라 시민 공동체의 집단적 지혜와 가치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규범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변론문은 후대에 서구 법학과 수사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명예살인'에 대한 법적 정당성 논증과 정당방위 개념의 발전에 중요한 선례가 되었습니다. 리시아스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변론 기법은 로마법과 중세 유럽 법학을 거쳐 근대 법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에도 형법학에서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의 개념을 논할 때 참조되는 고전적 사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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