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와 다르게 연예인들 침목 행사로 변질되었다는 비판 받아
패션잡지 W코리아가 주최한 ‘러브 유어 더블유 2025’ 자선 파티가 유방암 인식 개선 취지와 동떨어진 ‘연예인 친목·주류 파티’로 변질됐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행사장에는 BTS 뷔, 빅뱅 태양, 에스파 카리나, 아이브 장원영·안유진, 배우 변우석·정해인 등 유명 인사가 대거 참석해 술잔을 들고 음악을 즐기는 장면이 공식 SNS에 공유됐다. 네티즌들은 “유방암에 가장 안 좋은 게 술”이라며 음주와 가무 중심의 연출이 인식 개선과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재범의 ‘몸매’ 공연 가사가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한다는 이유로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박재범은 사과했으며 W코리아는 영상을 삭제했다. W코리아는 20년 누적 기부금 11억원을 밝혔지만, ‘국내 최대 규모’ 행사라기엔 실질 기부가 적다는 비교 비판도 나왔다.
일부는 한국유방건강재단의 러닝 기부 행사 ‘핑크런’(24년 누적 42억원)과 대비하며 형식 과잉·효과 부족을 문제 삼았다. 일각에서는 스폰서·연예인 노출 중심의 ‘핑크워싱’ 논란을 제기하며 환자·검진·치료 정보 제공이 부재했다고 꼬집었다. 반면 주최 측은 장기적 캠페인과 기부 실적을 강조했으나, 프로그램 구성과 메시지 관리 부실이 ‘목적과 수단의 괴리’를 키웠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공익 행사에서 주류·선정성·과도한 연예산업 요소가 개입될 경우 메시지 왜곡과 신뢰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한다. 논란은 자선 마케팅의 투명성, 기부 효율성, 환자 중심성 재정비 요구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베네치아 사육제
베네치아 사육제는 1162년 아퀼레이아와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며 시작되었다.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은 군사적 승전을 온 시민이 함께 축하하기 위해 산 마르코 광장에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 공동체 축제를 열었다. 이는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공화국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시민들 사이의 결속을 다지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행사였다. 13세기를 거치면서 사육제는 점차 제도화되었다. 1296년 베네치아 공화국 의회는 사순절 전날을 공식 축일로 지정하면서, 이 축제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기독교의 사순절을 앞두고 금욕과 절제에 들어가기 전, 시민들이 함께 즐기며 일상의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축제의 본래 취지였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사육제는 신분의 구별 없이 모든 베네치아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적 성격의 행사였으며, 공화국의 단결과 승리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공익적 목적이 명확했다. 가면을 쓰는 전통 역시 초기에는 평등의 상징이었습니다. 귀족과 평민,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가 가면 뒤에서 신분을 감추고 동등한 시민으로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엄격한 계급 사회였던 중세 베네치아에서 일시적이나마 사회적 위계를 무너뜨리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며, 사회적 평등을 경험하는 것—이것이 초기 베네치아 사육제의 진정한 모습이었습니다.

본질이 변질되어 사치의 상징이 되어버리다
14세기 르네상스가 본격화되면서 베네치아 사육제의 성격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부유한 상인 계급과 귀족들이 축제를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무대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군주들과 귀족 가문들은 축제 기간 동안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유명 예술가와 시인들을 초청했고, 화려한 살롱과 궁정에서 배타적인 가면 무도회를 열었다. 이제 사육제는 더 이상 모든 시민의 축제가 아니라,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사교의 장으로 변모했다. 15세기를 거쳐 18세기에 이르면 베네치아 사육제는 사치와 퇴폐의 절정에 달했다. 귀족들은 경쟁적으로 호화로운 의상과 정교한 가면을 제작했으며, 값비싼 보석과 금실로 장식된 복장은 그 자체로 부의 과시였다. 궁전에서는 밤새도록 향락적인 연회가 이어졌고, 도박과 방종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이 시기 베네치아는 '유럽의 쾌락도시'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것은 결코 명예로운 호칭이 아니었다. 본래 종교적 절제를 준비하는 행사였던 사육제가 오히려 기독교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타락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변질은 심각한 사회적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일반 시민들은 자신들이 세금으로 유지하는 공공 광장에서 벌어지는 귀족들의 사치 경쟁을 바라보며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느꼈다. 가면이 더 이상 평등의 상징이 아니라 계급을 구별하는 도구가 되었고, 화려한 장식과 행렬은 사회적 위계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냈다. 종교계에서는 축제의 도덕적 타락을 비판했고, 평민들 사이에서는 공동체 정신의 상실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결국 과도한 사치와 사회적 반감은 축제 자체의 존립을 위협했다. 1798년 오스트리아의 베네치아 점령 이후 사육제는 억압받았고, 1930년대 무솔리니 정권은 이를 완전히 금지했다. 공동체의 승리와 결속을 위해 시작된 축제가 특권층의 사치 과시로 변질되면서, 그 본래의 의미와 정당성을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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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를 다니며 역사를 가르치자 : 청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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