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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한국 장교 임관률 추락, 고려의 몰락을 떠올리다

by JWS 2025. 10. 18.

인기없어진 장교 한국 군사력 이대로 괜찮은가?

육군사관학교 81기 임관자가 223명으로 모집정원 330명의 67.6%에 그치며 임관 포기율이 32.4%로 집계됐다. 전년도 임관률 83.9%(277명) 대비 큰 폭 하락으로, 사관학교 충원·유지 체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합격 후 미등록자는 26명, 입학 후 퇴교자는 81명으로 나타났고, 퇴교 사유의 80% 이상(65명)이 ‘진로 변경’을 꼽았다. 공군사관학교(79.1%)와 해군사관학교(73.5%)도 임관률이 떨어지는 추세로 파악됐다. 공군 ROTC 임관률 역시 2021년 71.1%에서 2025년 56.2%로 급락하며 초급간부 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 고소득·고안정 일자리 선호, 군 조직문화·주거·가족지원 등 처우 문제, 전투·비전투 위험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한다. 국회 국방위원회 강대식 의원은 “초급간부 기피가 구조적 문제로 고착화됐다”고 지적하며 처우와 복무 전반의 근본 대책을 촉구했다. 군 안팎에선 주거·보수·진로전환 지원 확대, 장교 임관 교육·초기 현장 배치 개선, 리더십·경력개발 프로그램 강화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동시에 사관학교 선발-교육-임관-초임 배치의 전 주기 점검과 데이터 기반 이탈 원인 분석이 요구된다. 국방부는 임관률 하락 원인과 대책을 종합 점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단기간 반등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병중심체제로 인해 정규군 인기 없어진 고려

고려 말 권문세가는 막대한 토지와 농장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사병 집단을 운영하며 국가 밖의 군사력을 키웠다. 국가가 제공하는 토지(사급전)와 경제적 보상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무인들은 더 이상 국가의 정규군에 복무할 동기를 잃었다. 정규 장교단과 중앙군(윤령군, 좌·우위, 별초군)은 제도적 충원 체계가 붕괴되었다. 군역은 막중한 부담으로만 여겼기에 농민과 아전, 노비들은 군역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치거나, 대립(代立, 대신 복무)이나 방군수포제(군역 대신 곡물이나 포로 납부)를 통해 복무를 회피했다. 결국 정규군은 인원도, 전투력도 없는 껍데기만 남은 조직으로 전락했다. 반면 권문세가의 사병은 경제적 보상과 사적 충성심으로 결속되어 실질적인 군사력으로 기능했고, 국가의 통제력은 점점 무력해졌다. 고려의 군사 시스템은 공적 질서가 아닌 사적 이익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외적의 침입에 시달리며 황폐해진 고려

14세기 후반,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지면서 고려는 심각한 국방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정작 이를 막아야 할 수군과 육군의 방비력은 극도로 약화된 상태였다. 정병(상비군) 충원은 거의 불가능했고, 임시로 편성된 익군(翼軍) 같은 농민군 조직도 경제적 지원 부족으로 제대로 유지되지 못했다. 지방군의 숙련도와 실전 능력은 바닥을 쳤고, 왜구는 해안을 넘어 내륙 깊숙이까지 약탈을 자행했다.군사력 약화는 국가 재정 파탄과 지방 방위 체계의 완전한 붕괴로 이어졌다. 백성들은 왜구의 약탈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었고, 국가는 이를 보호할 능력을 상실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무인 출신 명장 최영과 이성계가 대두했다. 그들은 급격한 군제 개혁과 새로운 정치 질서를 요구했고, 결국 고려 말의 군사적·사회적 위기는 조선 왕조 탄생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귀결되었다. 고려의 몰락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붕괴된 군사 시스템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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