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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러시아 위협에 맞선 독일의 재무장, 맘루크 왕조에서 배운 유럽의 방어전

by JWS 2025. 10. 20.

푸틴 야욕에 맞서는 독일

독일 정보기관 수장인 마르틴 예거 연방정보국(BND) 국장은 “러시아의 나토 침공 가능 시점을 2029년 이후로 안이하게 가정해선 안 된다”며 “우리는 이미 하이브리드 방식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가 유럽 사회 분열과 나토 약화를 목표로 영공 침범, 사이버공격, 여론조작을 지속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직접 충돌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은 방공·포병·전자전 등 9개 분야의 역량 강화를 예고하며 공동 대응 로드맵 마련에 나섰다. 전황 장기화 속 유럽 안보당국의 전망도 ‘10년 이상 회복 불가’에서 ‘3~5년 내 재침공 가능’으로 바뀌고 있다.

독일은 2029년까지 전시 수행 능력 확보를 목표로 국방비 증액과 병역제 손질에 착수했다. 정부가 마련한 병역법 개정안은 평시 자원입대를 유지하되 안보 위기 시 의회 동의로 강제 징집을 가능케 하는 내용을 담았다. 2027년부터는 만 18세 남성 전원이 복무 전제의 신체검사를 받게 되며, 월 최소 2000유로 급여 보장·주거·의료·철도 무상 등 인센티브도 제시됐다. 정치권 일각에선 2035년 병력 26만 명 목표 달성을 위해 사실상의 징병제 부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 병역거부 신청은 급증세를 보이며 사회적 논쟁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독일의 재무장 행보는 러시아 위협의 가시화와 유럽 방위 질서 재편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역사상 광활한 영토를 가졌던 몽골에 맞서 싸워 승리했던 맘루크 왕조의 승리 비결에 대해 알아보자.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한 몽골군, 맘루크 왕조에게 패하다

13세기 중반, 몽골 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며 역사상 유례없는 정복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칭기즈 칸이 세운 제국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동유럽까지 진출했고, 1258년에는 바그다드를 함락시키며 이슬람 세계의 심장부를 무너뜨렸다. 당시 몽골군의 명성은 공포 그 자체였다. 어떤 군대도 그들의 빠른 기병대와 포위 전술을 당해낼 수 없었고, 유럽은 '타타르의 공포'에 또 한 번 떨고 있었다.하지만 1260년, 팔레스타인의 아인 잘룻이라는 작은 계곡에서 역사의 흐름이 바뀐다. 이곳에서 맘루크 왕조가 몽골군의 진격을 저지하며, 몽골 제국의 서진은 사실상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맘루크의 전략

맘루크 왕조의 승리는 단순한 무력 충돌의 결과가 아니었다. 이집트의 술탄 쿠투즈와 그의 장군 바이바르스는 세 가지 핵심 전략을 통해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몽골군을 격퇴했다. 맘루크는 몽골군의 이동 경로, 병력 규모, 배치 상황을 면밀히 파악했다. 지역 지형에 대한 뛰어난 지식을 활용해 몽골군의 동선을 사전에 예측했고, 다층적인 정보망을 통해 적의 기습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전쟁에서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놀랍게도 맘루크는 당시 잠재적 적대자였던 십자군 국가들과 일시적 동맹을 구축했다. 아인 잘룻 전투 직전, 십자군은 맘루크군이 자신들의 영토를 통과하고 보급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몽골이라는 공동의 위협 앞에서 종교적·정치적 대립을 잠시 내려놓은 것이다.

이러한 외교적 기민함 덕분에 맘루크는 여러 전선에서의 충돌을 피하고 몽골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전투 당일, 맘루크는 몽골군이 자랑하던 전술을 역이용했다. 일부 기병을 전방에 배치해 거짓 후퇴를 반복하며 몽골군을 깊숙이 유인했고, 주력 병력은 지형에 은밀히 배치해두었다. 결정적 순간, 숨어있던 맘루크 주력군이 일제히 나타나 몽골군을 포위하고 집중 공격을 가했다. 몽골 기병의 기동력을 상쇄하는 동시에, 맘루크 자신들의 강력한 중기병을 최대한 활용한 전략이었다. 아인 잘룻 전투의 승리는 단순히 한 전투의 승패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녔다. 이 전투로 몽골의 서방 원정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시리아와 레바논을 포함한 중동 이슬람 세계는 몽골의 지배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맘루크 왕조는 이후 중동 지역의 확고한 패권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무엇보다 이 전투는 군사사적으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정보전, 외교 전략, 기동전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수적·전술적 우위를 가진 적조차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불패의 신화도 치밀한 준비와 전략적 사고 앞에서는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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