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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광복절 특별사면 논란, 아테네 대사면에서 배우는 정치의 양날

by JWS 2025. 8. 13.

힘있는 정치인들 사면 법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시민사회 단체들이 이재명 정부의 첫 광복절 특별사면을 두고 “사회적 분열을 초래한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경실련은 조국·최강욱·윤미향 등 논란이 큰 정치인과 일부 경제인이 포함돼 “충분한 책임을 졌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조국 전 대표가 전체 형기의 약 30%만 복역한 점과 홍문종·정찬민·심학봉 등 부패 범죄 전력이 있는 정치인의 포함을 문제 삼았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비리·부패 정치인 사면은 사면권 남용”이라며 정치 야합 논란을 제기했다.

보수 성향 단체도 “서민 중심 사면이 아니라 부적절한 인사가 포함됐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15일 자로 83만6687명 특별사면을 발표하며 국민통합을 취지로 내세웠고, 사면·복권 대상에는 조국·정경심·최강욱·윤미향·조희연·윤건영·백원우·김은경·이용구 등 여야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과거 아테네도 정치 혼란 속에서 사면을 선택했지만, 그 결정은 정의와 화해 사이에서 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한국의 특별사면과 어떤 점이 다른지 살펴보자.

사진 왼쪽부터 조국 전 대표, 조 전 대표 부인 정경심씨, 윤미향, 최강욱 전 의원. /뉴스1


정치 혼란기를 겪으며 권력을 휘두른 아테네 정치인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는 아테네에게 단순한 군사적 실패가 아니라 정치 체제 전체의 붕괴를 의미했다. 스파르타의 후원 아래 등장한 삼십인 정권은 아테네 역사상 가장 잔혹한 과두정치의 사례가 되었다. 30명의 과두 정치인들은 민주정의 잔재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무자비한 숙청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의 통치 방식은 공포정치 그 자체였다. 민주정 시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사들은 물론이고, 단순히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재산 몰수와 처형의 대상이 되었다. 삼십인 정권은 정적 제거를 넘어서 아테네 시민 전체를 공포로 지배하려 했다. 이들에게 정치는 협상이나 타협의 영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제로섬 게임이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외세인 스파르타의 힘에 의존하면서도 정통성을 확보하려 애썼다는 것이다. 민주정의 '혼란'과 '방종'을 질서와 절제로 바꾸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개인적 권력욕과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이들의 가혹한 통치는 아테네 시민들 사이에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처형당한 자들의 가족, 추방당한 시민들, 그리고 공포 분위기에 질식해가던 일반 시민들까지 점차 저항 세력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삼십인 정권의 권력 남용은 결국 자신들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30인 참주정 잘못된 판결로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


화해의 정치를 위해 대 사면을 선택한 아테네 최후

기원전 403년 민주주의 세력이 주도한 내전이 성공하면서 아테네는 다시 한 번 중대한 기로에 섰다. 과두정권을 무너뜨린 승리의 기쁨도 잠시, 복원된 민주정은 더 큰 과제에 직면했다. 바로 깊이 분열된 사회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복수의 유혹은 강력했다. 삼십인 정권 하에서 고통받았던 시민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당연히 정의로운 처벌을 요구했다. 가해자들을 색출해 처벌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며, 진실을 밝혀 역사에 기록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길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테네의 정치 지도자들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테네가 선택한 것은 '망각의 합의'였다. 과거의 죄과를 묻지 않고 용서한다는 이 대담한 결정은 고대 세계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는 단순한 관용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주의에 기반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내전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완전한 정의 실현을 추구하다 보면 또 다른 분열과 갈등만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을 둘러싼 논쟁은 치열했다. 정의 없는 화해가 진정한 화해일 수 있는가? 가해자들에 대한 면죄부가 또 다른 불의를 낳지는 않을까? 피해자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정치적 지혜일까? 이런 질문들은 당시 아테네 시민들을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아테네의 대사면은 정치적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내전은 종식되었고, 민주정은 안정적으로 복원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정의와 화해, 용서와 처벌 사이의 긴장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이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앞으로도 계속 풀어가야 할 숙제였다. 아테네의 선택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에서 최선을 추구한 정치적 타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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