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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트럼프 천마총 금관 논란, 외교 선물은 언제부터 정치가 되었을까?

by JWS 2025. 11. 4.

신라 천마총 금관 쓴 트럼프 합성물로 비난받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서 선물받은 ‘신라 천마총 금관’ 모형을 계기로, 트럼프가 금관을 쓰고 춤을 추거나 왕좌에 앉아 있는 장면 등 각종 생성형 AI 합성물이 SNS에서 급속 확산하고 있다. 일부 영상·이미지는 트럼프가 금관을 쓴 채 전투기를 몰아 시위대를 공격하는 등 과격한 상상을 가미했고, 지지 집회 장면과 결합해 정치적 선전물처럼 소비되기도 했다. 해당 물결은 29일 경주 국립경주박물관 국빈 환영식에서 무궁화대훈장 수여와 함께 금관 모형이 전달된 직후 본격화했다. 외교부 의전당국은 금관이 “하늘의 권위와 지상의 통치를 연결하는 신성함”을 상징한다고 설명했고, 트럼프는 “매우 특별하다”고 화답했다.

미국 언론은 이 상징 선물이 전국적 ‘노 킹스(No Kings)’ 시위와 맞물려 역설적 의미를 띠었다고 해석했다. 워싱턴포스트와 AFP는 ‘왕권 상징’ 선물이 권위주의 논란의 트럼프에게 전달된 맥락을 부각하며 정치적 함의를 짚었다. 온라인에선 역사 유물의 상징성·외교 의전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쟁과 함께, AI 합성물의 오도 가능성·저작권·인격권 침해 우려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상징 선물의 외교적 메시지는 수신국의 정치 환경에 따라 ‘의전’과 ‘정치 선전’ 사이에서 변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중동의 패권을 다툰 맘루크 왕조와 일칸국 간의 외교적 상징물에 대해서 알아보자.


중동의 패권을 다투는 맘루크 VS 일칸국

13세기 중반, 중동 지역은 거대한 권력 전환기를 맞이했다. 1258년 몽골의 훌라구 칸이 이끄는 군대가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750년 역사의 아바스 칼리파국을 멸망시켰다. 그러나 1260년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이집트의 맘루크 술탄국이 몽골군을 격퇴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이후 약 100년간 맘루크와 일칸국은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맘루크 술탄국은 원래 노예 출신 전사들이 세운 독특한 군사 국가였다.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이들은 스스로를 이슬람 세계의 수호자로 자처했다. 특히 바그다드가 몽골에 함락된 후, 맘루크는 아바스 칼리파의 후손을 카이로로 초청해 명목상의 칼리파로 옹립함으로써 이슬람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맘루크는 단순한 지역 세력이 아닌 이슬람 세계 전체의 대표자로서 권위를 확립하려 했다.

반면 일칸국은 징기스 칸의 손자 훌라구가 세운 몽골 제국의 서방 울루스였다. 페르시아, 이라크, 아나톨리아 일부를 지배하며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일칸국은 초기에는 불교와 기독교에 우호적이었고, 심지어 십자군 국가들과 동맹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는 이슬람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맘루크와 직접적인 이념 충돌을 야기했다. 두 국가 간의 갈등은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섰다. 시리아 북부와 팔레스타인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무역로의 핵심이었으며, 이 지역의 통제권은 중동 전체의 패권을 의미했다. 맘루크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고, 일칸국은 실크로드의 서쪽 끝을 통제했다. 양측은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영향력을 두고 수십 년간 간헐적인 전쟁을 치렀다. 전투는 대규모 야전부터 국경 지역의 소규모 충돌까지 다양했다.

1260년대부터 1320년대까지 양측은 호무스, 알레포, 다마스쿠스 등을 놓고 반복적으로 싸웠다. 맘루크의 중장기병과 정예 궁수들은 일칸국의 몽골 기병 전술에 효과적으로 대응했고, 지형적 이점을 활용한 방어 전략으로 몽골의 진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끊임없는 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막대한 부담이었다. 전쟁 비용은 국가 재정을 압박했고, 지속적인 동원은 경제 활동을 위축시켰다. 또한 십자군 잔존 세력, 아르메니아, 아나톨리아의 튀르크 부족 등 주변 세력들이 양측의 갈등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중동 정세는 더욱 복잡해져갔다. 14세기 초, 일칸국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1295년 가잔 칸이 즉위하면서 일칸국은 공식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했습다. 이는 맘루크와의 관계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왔다. 더 이상 이슬람 대 이교도의 구도가 아니게 되면서, 양측은 완전한 적대 관계에서 벗어나 외교적 접촉과 협상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계속되었지만, 동시에 사절 교환과 협상도 빈번해졌다.


두 국가에 외교수단이 된 상징물은?

맘루크 술탄국과 일칸국 사이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킬앗(khil'a)'과 보검은 단순한 선물을 넘어 정교한 외교 언어로 기능했다. 이러한 상징물들은 권력 관계, 동맹 의사, 종주권 주장 등을 암묵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었으며, 중세 이슬람 세계와 몽골 제국의 외교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였다. 킬앗은 '명예의 옷(robe of honor)'을 의미하는 아랍어로, 화려하게 장식된 예복을 말한다. 이슬람 세계에서 킬앗 하사는 오랜 전통을 가진 의례였다. 군주가 신하에게, 또는 강대국이 약소국에게 킬앗을 하사하는 것은 단순히 옷을 선물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여자가 수령자의 지위와 권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으며, 동시에 수여자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킬앗의 품질과 장식, 그리고 함께 하사되는 물품들은 세밀한 위계를 표현했다. 금실로 수놓은 비단 킬앗은 최고급 예우를 의미했고, 함께 하사되는 터번, 허리띠, 망토 등의 구성도 수령자의 지위를 나타냈다. 맘루크 술탄들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종주권을 주장하기 위해 주변 소국의 군주들과 총독들에게 킬앗을 하사했다.

이를 받는 것은 맘루크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보검 또한 중요한 외교적 상징물이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검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정의, 권위, 군사력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특히 화려하게 장식되고 명문이 새겨진 의례용 보검은 군주의 권위를 대표했다. 술탄이나 칸이 보검을 하사하는 것은 수령자에게 군사적 권한과 통치권을 부여하거나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맘루크와 일칸국 사이에서 이러한 상징물의 교환은 미묘한 권력 게임이었다. 양측이 서로를 대등한 군주로 인정할 때는 상호 교환의 형태로 킬앗과 보검을 주고받았다. 이는 동맹 의사를 표현하거나 평화 협상의 성의를 보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하사하려 할 때는 상대방의 종속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외교적 긴장을 야기하기도 했다. 전쟁 중에도 이러한 상징물의 교환은 계속되었다. 휴전 협상이나 포로 교환 시, 양측은 킬앗과 보검을 교환하며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표현했다.

이는 전쟁이 끝난 후의 관계를 염두에 둔 신중한 외교적 제스처였다. 중세 중동의 외교는 무력 충돌과 평화적 교섭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상징물은 이러한 관계를 조율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14세기 중반 일칸국이 내부 분열로 쇠퇴하고 결국 해체되면서, 맘루크는 중동의 주도권을 확고히 했다. 그러나 킬앗과 보검을 통한 외교 전통은 계속되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 티무르 제국 등 새로운 세력들도 이러한 상징적 외교 언어를 계승했다. 킬앗과 보검은 중세 이슬람 세계와 몽골 제국이 만들어낸 독특한 외교 문화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상징물들은 권력과 권위를 가시적으로 표현하고, 복잡한 정치적 관계를 의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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