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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취업난, 명·청 과거제의 학위 인플레이션을 닮았다

by JWS 2025. 12. 19.

자격증 있어도 일자리 없다… 문과 전문직 3대장의 위기

4년 수험 끝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김모(29)씨. 하지만 1년 넘게 취업준비생 신세다. 회계법인에서 요구하는 최소 1년 이상 '실무 수습' 자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격시험 합격이 곧바로 직업 진입으로 연결되지 않는 현상이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 이른바 '문과 전문직 3대장'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숫자가 심각성을 말해준다. 2025년 회계사 시험 합격자 1,200명 중 10월 말 기준 수습기관을 배정받지 못한 '미지정 회계사'가 443명(약 39.6%)에 달했다. 세무사 역시 등록 전 6개월 실무교육이 필요한데, 민간 수습이 막히면 세무서 교육을 택할 수 있으나 보수·업무경험 측면에서 기피된다. 법조계도 사정이 비슷하다. 제14회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1,744명이지만, 취업 시장에서 선호되는 일자리로의 진입 비중은 높지 않다.

핵심 원인은 수요-공급 불균형이다. 매년 일정 규모의 합격자가 꾸준히 배출되며 공급이 누적되는 반면, 경기 둔화와 조직 효율화로 신입 수요가 줄어들었다. 여기에 생성형 AI가 자료 대조, 초안 작성, 판례 탐색 등 '주니어 업무'를 대체하면서 신규 채용 여력이 더 축소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역설적으로 지원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 공인회계사 1차 접수자는 2023년 15,940명에서 2024년 16,914명으로 증가했고, 세무사 1차 접수자는 2023년 16,817명에서 2024년 22,455명으로 급증했다. 로스쿨 관문인 LEET 원서접수도 2024학년도 17,360명에서 2025학년도 19,400명으로 늘어 '자격증 쏠림'이 꺾이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합격자 수 조정, 수습기관 확대, 직무 재설계 등 구조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융당국도 회계사 선발·수습 제도 개선 논의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격은 있는데 일자리가 없는 구조. 이 문제, 처음이 아니다. 600년 전 명나라와 청나라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답을 찾지 못했다.

공인회계사 선발 인원 정상화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선발 인원 정상화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출처:뉴스1


명·청 과거제의 학위 인플레이션

1400년경 명나라 초기. 국가가 공인하는 하급 학위인 생원(秀才) 수는 약 3만 명이었다. 인구 약 6,500만 명 중 1명꼴로, 희소성이 높았다. 하지만 청 후기에 이르면 생원 수가 수십만 명으로 늘어났다. 인구가 증가한 것도 있지만, 1인당 생원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관직이었다. 중앙의 진사(進士) 합격자 정원과 각급 관료 정원은 거의 고정되어 있었다. 인구가 늘고 응시자가 폭증해도 관직 수는 늘지 않았다. 생원 가운데 현실적으로 진사까지 올라갈 "승진 가능자"는 2%도 안 됐다. 다수는 평생 '시험자격증 소지자' 신분에 머물렀다. 과거제는 처음부터 "정원제"였다. 각 성·부·현에 배정된 생원·거인·진사 선발 쿼터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고, 관료 정원 역시 정(正)·종(從) 품계별로 중앙에서 규정했다. 인구가 늘고 응시자가 폭증해도 관직 수 자체가 크게 늘지 않으면서 '학력-직위 불일치'가 구조적으로 심화됐다. 청 후기에는 생원·거인·진사 모두에서 "유학(遊學)·백수 인사"가 다수 발생했다. 학위는 있지만 실제 관직은 없는 '교육과잉-직업부족' 계층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청 정부는 "은규(捐納)" 제도로 돈을 내고 학위·관직을 사는 통로를 확장했다. 하지만 오히려 명의만 관료인 인구가 더 늘어 학위의 희소성과 상징 자본이 약화되는 인플레이션을 가속시켰다.


미임용 생원들은 어디로 갔나

대규모 '미임용 생원·거인'은 관직을 포기하고 향촌 사회에 남았다. 그들은 서당·사숙 교사, 가정교사, 서원 강사로 일했다. 문서작성·소송대리, 토목·수리사업 청부 등 다양한 준전문직으로 분산됐다. 일부는 개인 문집·지방지 편찬, 출판·서점·서각 운영에 종사하면서 지식·출판 시장을 키웠다. 이들은 지방 사회의 여론 형성과 향약·문회·자치에 깊이 개입해 '비공식 엘리트'로 군림했다. 관직은 없었지만, 향촌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했다. 명·청대 지방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것은 이 미임용 생원들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하지만 이런 분산이 좌절감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했다. 구조인구 연구는 생원 집단에서 봉기·소요·상소 운동 참여가 빈번한 점을 지적한다. 승진 정체와 학위 가치 하락이 정치·사회적 불안의 한 축이 됐다. 명·청 후기 지식인의 불만·개혁 담론·신교육 운동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이 학위 인플레이션이었다. 결국 명·청 과거제는 청말 신교육 운동과 과거제 폐지(1905)로 막을 내렸다. 600년 지속된 제도가 무너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학위 인플레이션과 일자리 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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