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이순재 별세, 로마의 대배우 로스키우스처럼 시대를 바꾼 사람

위대한 배우로 기억될 이순재

원로 배우 이순재가 25일 별세했다.고인은 1934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으로 4세 때 서울로 내려왔고, 호적상 출생연도는 1935년이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햄릿’에 감명받아 배우의 길을 택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을 넓혔다. 드라마 주연작만 140편에 달하며 조·단역을 합치면 한국 드라마사에 손꼽히는 다작‧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70대에는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기존의 근엄 이미지를 벗고 ‘야동 순재’ 캐릭터로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았다. 제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부대변인,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을 지내며 잠시 정치권에서도 활동했다. 세종대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고, 지난해 10월 건강 문제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 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개소리’ 등에 출연했다. 그는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로 기록되며 한평생의 연기혼을 증명했다. 연기자로서 사회적 영향력까지 가졌던 배우 이순재. 고대로마에도 배우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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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상 대배우 로스키우스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정 시대, 한 배우가 무대를 넘어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퀸투스 로스키우스 갈루스는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예능인이 아니었다. 그는 로마 최고의 웅변가 키케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배우라는 직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인물이었다. 로스키우스의 출발은 초라했다. 라티움 지방 라누비움 인근 소로니움 출신으로, 노예 신분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다만 학계에서는 그가 하층 자유민이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확실한 것은 그가 낮은 사회적 배경에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로스키우스는 사람 흉내를 잘 냈다. 이 재능을 알아본 주인 또는 보호자는 그를 체계적으로 배우로 키웠다. 청소년기 이전부터 무대에 선 그는 포럼에서 활동하는 변론가들의 제스처와 발성을 관찰하며 연기술을 갈고닦았다.

특히 유명 연설가 호르텐시우스의 몸짓과 리듬을 흡수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의 외모도 독특한 자산이었다. 뛰어난 용모와 인상적인 체격에 약간의 사시가 더해져 오히려 매력적인 인상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전해진다. 로스키우스는 희극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세밀한 리허설로 다듬은 정교한 연기와 즉흥 재능을 결합한 독창적 연기법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명성이 쌓이자 재산도 늘었다. 노예 신분이었다면 초기 수입은 주인의 몫이었지만, 점차 자신의 몫을 인정받으며 경제적 자유를 확보했다. 결정적 순간은 독재관 술라로부터 기사 계급을 상징하는 황금 반지를 받으면서 찾아왔다. 천한 배우 신분에서 벗어나 로마 상류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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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천시하던 직업 배우의 가치를 높인 로스키우스

공화정 로마에서 배우는 철저히 멸시받는 직업이었다. 대부분 노예나 해방노예로 구성된 배우들은 법적으로 인파메스로 분류돼 선거권과 공직 진출 등 시민권 일부가 제한됐다. 사회적 평판도 바닥이었다. 로스키우스는 이런 구조에 균열을 낸 인물이었다. 그의 영향력은 키케로와의 관계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로마 최고의 웅변가 키케로는 로스키우스에게 직접 연기 수업을 받았다. 두 사람은 배우와 연설가 중 누가 감정과 생각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지를 두고 경쟁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로스키우스는 연기와 웅변 기술을 비교하는 저술까지 남겼다. 이는 배우의 기술을 단순 오락이 아닌 이성과 수사학에 기초한 지적 기술로 끌어올리려는 시도였다. 그 결과 무대 연기는 법정과 정치 연설의 참고 모델이 됐다. 연극적 수행이 로마 공적 담론에서 부정적 비유가 아닌 긍정적 참조점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로마 극장은 모든 신분과 계층이 모여 박수와 야유를 보내는 공간이었고, 특정 배우에 대한 반응은 정치적 평판과도 연결됐다.

로스키우스처럼 전 계층에게서 찬탄을 이끌어낸 배우는 몸짓과 목소리로 집단 감정을 움직이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기원전 70년대 법정 사건은 배우의 경제적 위상을 공론화한 계기였다. 동업자와의 분쟁에 휘말린 로스키우스를 키케로가 변호하면서, 그는 예외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는 스타 예술가의 상징이 됐다. 이 재판을 통해 예술 노동의 가치와 재산권이 공적으로 검토됐고, 연극이 상업적 사업이자 전문 직역으로 인식되는 전환점이 마련됐다. 로스키우스의 유산은 로마를 넘어섰다. 그의 이름은 탁월한 배우를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됐고, 중세와 근세 유럽에서도 뛰어난 배우에게 로스키우스라  별칭을 붙이는 관행이 생겼다. 한 배우의 명성이 서구 연극 전통 전체에서 예술가의 탁월함과 사회적 위신을 상징하는 기호로 자리 잡은 것이다. 로스키우스는 배우 신분에 대한 경멸 규범의 예외이자, 공공 공간에서의 퍼포먼스 개념을 재정립한 선구자로 역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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