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각축장이 된 섬들의 역사가 주는 교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어떤 방식으로든"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국제 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다.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는 북극항로와 희토류 자원의 요충지로, 미국과 중국의 북극 경쟁 한복판에 놓여 있다. 그린란드 제2도시 시시미우트 주민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을 영화 '덤 앤 더머'에 합성한 이미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조롱했다. 냉전 시기 미군 기지가 방치된 사례를 언급하며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불신을 드러냈다.수도 누크의 주민들은 더욱 직접적이다. "우리는 그린란드인으로 남고 싶다"며 미국 편입을 거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원과 돈 때문에 자신들이 거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토로가 이어진다.동시에 이번 사태는 덴마크 자치령 체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도 표면화시키고 있다. 완전한 자주권과 독립을 바라는 여론이 자극받으면서, 그린란드는 미국의 압박과 덴마크로부터의 독립 사이에서 복잡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 아니다. 기원전 8세기부터 250년간 지중해 패권 경쟁의 각축장이었던 시칠리아 섬은, 요충지에 사는 주민들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떤 운명을 맞이하였는지 알아보자.

시칠리아가 겪은 250년 전쟁의 악순환
기원전 8세기부터 시칠리아는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가 차례로 패권을 다투는 전장이 되었다. 지중해 최대 섬이자 아프리카, 이베리아, 이탈리아 본토를 잇는 해상 무역로의 결절점이었기 때문이다.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에서 사르디니아, 서시칠리아, 남부 에스파냐까지 무역항과 해상 통로를 확보해야 했고, 그리스 식민도시들도 시칠리아 동부와 남부를 곡물, 와인, 금속의 보급 거점으로 삼았다. 양측 모두에게 시칠리아 지배는 경제적 생존이자 지정학적 우위를 결정짓는 문제였다.기원전 480년 히메라 전투에서 시라쿠사 연합이 카르타고 원정군을 격퇴한 이후, 약 250년간 그리스와 카르타고 사이의 시칠리아 전쟁이 전개되었다.
이 전쟁은 어느 한쪽의 결정적 승리 없이 전쟁, 휴전, 협정의 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기원전 409년부터 405년까지 카르타고의 제2차 시칠리아 침공으로 셀리눈테, 히메라, 아크라가스 등 그리스 도시들이 함락되며 막대한 인명과 재산 손실이 발생했다. 기원전 397년부터 392년까지는 시라쿠사의 디오니시오스 1세가 반격에 나섰으나, 역병으로 카르타고군이 철수한 후 조약을 맺으며 할리쿠스 강 서쪽을 카르타고 지배 지역으로 확정했다.기원전 376년 크로니움 전투에서 시라쿠사가 패배해 1000탈란톤의 배상금을 지불했고, 기원전 339년 크리미수스 전투에서는 티몰레온이 카르타고군을 대파하며 할리카스 강 경계를 재확정했다. 기원전 307년부터 306년까지 아가토클레스가 카르타고 본토를 공격했으나 동맹국의 이탈로 실패하며 메시나를 양도해야 했다.

현지 도시들에게 강요된 선택
시칠리아 그리스 폴리스들은 내부 분열과 참주 정치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반복했다.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거나, 반대로 카르타고에 맞서 시라쿠사와 연대하는 양자택일이 강요되었다.기원전 345년에는 시라쿠사 내부 정치 분쟁 당사자가 카르타고 군대를 도시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는 외국 군사력이 도시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위험한 선례가 되었다. 원주민인 시켈족과 시칸족은 그리스와 카르타고 양측 모두에 의해 섬 내륙으로 밀려났다.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어느 편에 붙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존립이 좌우되었다. 소도시들은 자발적 선택보다 군사적 협박과 경제적 종속 하에서 강대국의 보호를 받아들여야 했다. 기원전 3세기 들어 로마가 메사나 위기를 계기로 시칠리아에 개입하면서 구도가 삼각 경쟁으로 확대되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241년) 결과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전역에서 축출되었고, 시라쿠사도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로마에 병합되어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반도 밖 최초의 로마 속주가 되었다.이후 약 600년간 시칠리아는 로마의 곡창 역할을 했다. 그리스어 사용 등 이전의 문화적, 언어적 다양성은 상당 부분 유지되었으나, 정치적 자율성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 청랑이 추천하는 다른 글을 읽고 싶다면 클릭하세요! |
미국은 왜 그린란드에 관심을 가질까?
미국의 영토 확장 사례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영토 확장을 통해 경제적, 군사적, 그리고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며 세계 강대국으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알래스카와 하와이의 편입은 이러한 영
jwsmento.com
'청랑 세상 식견 > 청랑 이슈 식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두바이 쫀득 쿠키 열풍, 당나라 '호병' 유행과 닮은 이유 (0) | 2026.01.17 |
|---|---|
| 윤석열 전 대통령 사형 구형, 1996년 ‘성공한 쿠데타’ 판결의 귀환 (2) | 2026.01.14 |
| 전원주 투자 비법은 관상? 청나라 옹정제도 관상으로 한 인사 개혁 (1) | 2026.01.12 |
| 나나 자택 침입범이 역고소, 조선의 판결 기준으로 보는 정당방위 (0) | 2026.01.09 |
| ‘국민배우’ 안성기 별세, 영화인장 속 채플린과 닮은 추모 행렬 (1) | 2026.01.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