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료만큼 비싸진 교재비
대학 입시 사교육비에서 수강료만큼이나 교재비·콘텐츠비가 큰 부담으로 떠오르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용 구조가 확산하고 있다.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필수·선택 교재와 강사 제작 자료가 다층적으로 판매되고, 주간지·사설 모의고사 등이 '콘텐츠비' 명목으로 사실상 수업 필수 구매 항목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부모들은 과거보다 '학원 콘텐츠'로 판매되는 교재량이 늘어 매달 추가 비용이 커졌다고 토로했고, 수험생들은 강사의 커리큘럼을 따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한 재수 기숙학원은 월 교습비(수업료+숙식비) 360만원을 안내하면서도 단체복비·교재비·콘텐츠비는 별도라고 밝혔고, 상담 과정에서는 교재·콘텐츠비가 평균 50만원, 수능 직전에는 80만~90만원까지 늘 수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월 실지출이 430만원 수준으로 뛰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하지만 비싼 값을 주고 산 교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미사용 주간지·모의고사가 대량으로 남거나 중고 거래로 처분하는 사례도 이어진다.
제도상 학원은 원칙적으로 교습비 외 교재비를 추가 징수할 수 없지만, 일부 학원은 교재비를 교습비에 포함하거나 출판·서점업을 별도 등록해 자체 교재 판매로 비용을 받는 방식이 활용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교재 판매가 학원·강사의 부수입이 되는 구조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고, 산출 근거와 가격 책정의 투명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교육부와 국가통계에 따르면 사교육 참여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60만4000원으로 60만원을 처음 넘어섰고, 서울 고등학생은 105만4000원으로 특히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사교육비 증가 속에서 교재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할 가능성이 크며, 교재비 공개·상한·기준 마련 등 별도 규정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13~14세기 유럽 대학에서 교재비가 학비를 넘어설 정도로 부담이 컸고, 대학이 페키아(pecia) 시스템으로 이를 통제하려 했던 역사는, 교재비 구조가 어떻게 교육 접근성을 좌우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연봉 절반을 쓰는 교과서 한 권
인쇄술 이전의 대학 교재는 모두 손으로 베끼는 필사본이었고, 양피지·잉크·삽화·장정까지 모두 수작업이었다. 대략 계산에서 200매짜리 책 한 권을 사는 데 옥스퍼드 펠로 연봉의 절반이 들었다는 추정도 있을 정도로, 한 권 자체가 "자산"이었다. 파리·볼로냐 등 대학 도시에서는 이 수요를 맞추기 위해 대학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필사공·서점(stationer)을 두고, 이들의 임금·재료비·판매가를 규제했다. 대학은 너무 비싼 책을 학생이 통째로 사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페키아(pecia)라고 불리는 "부분 대여" 제도를 운영했다. 한 권의 교과서를 여러 장(quire)로 나누어, 각 장(pecia)을 학생·필사공에게 일정 기간(볼로냐에서 1주일) 단위로 빌려주고, 그 사이에 베끼게 했다. 파리·볼로냐 법학·신학 텍스트의 경우 한 권이 30~40개의 pecia로 나뉘어, 여러 필사자가 동시에 다른 부분을 베껴 전체 생산 속도를 올리는 방식이었다. 대학 규정은 서점(stationer)가 어떤 책을 몇 pecia로 나누어 보유할지, 각 pecia의 대여 기간과 가격(Treviso 대학 규정에서 견본 1개 대여 6데나리)을 정해 두었고, 부정확하게 베끼면 벌금을 부과했다. 학생은 "책 한 권을 사는 비용" 대신 "부분 대여료 + 필사 비용(자기 시간 또는 필사공 임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이것도 결코 싸지는 않았다.

대학의 가격 통제와 학생의 생존 전략
이탈리아 Treviso 대학(1318년 규정)에서 견본을 빌리는 비용이 6데나리, 교정 비용 별도였다. 13~14세기 프랑스 자료에서는 19개 pecia 분량의 필사본 대여료가 9데나리, 14개 pecia 대여가 12데나리 등으로 기록되어 있어, 교과서를 한 바퀴 베낄 때 대여료만으로도 상당한 금액이 나왔다. 빈 대학 15세기 경우 인쇄 후에도 기본 교과서 하나 가격이 1길더 정도로, 이는 법학 교수 1년 강의료나 수도원의 고위 성직자 등록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책 한 권" 또는 "주요 교과서 몇 권"은 대부분 학생·서민에게는 연소득에 비례하는 부담이었고, 부유 가문이 아니면 소장 자체가 어려웠다. 파리대학은 13세기 후반까지 책 생산에 관여하는 서점, 양피지 상인을 공식 등록시키고, 이들에게 "너무 싸게 사지 않고, 너무 비싸게 팔지도 말라"는 선서를 요구했으며, 위반 시 100페니 상당의 보증금을 몰수했다. 대학은 교과서 견본을 직접 교정·인준하고, 이를 pecia 단위로 나누어 서점에 맡기며, 대여료·판매가를 정해 텍스트 정확성과 가격을 함께 통제하려 했다. 그럼에도 부유한 학생·교수·귀족 고객층은 화려한 장식·두꺼운 양피지를 요구해 가격을 끌어올렸고, 대학은 이 수요 때문에 양피지 가격까지 별도로 규제해야 했다.
교재 비용은 단순 시장가격이 아니라, 대학–도시–길드의 규제 대상이 될 정도로 중요한 "교육 인프라 비용"이었다. 빈·파리 등에서 남아 있는 장부를 보면, 입학·등록 비용, 강의·논쟁 참가비, 숙박·식사·옷·난방비 외에 책·필기구·양피지 비용이 별도 큰 항목으로 잡혔다. "핵심 교재 몇 권 + 필사용 공책·양피지" 비용이 교수 1년 강의료, 혹은 학생 한 명의 1년 생활비 상당에 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대학이 아예 "(받아쓰기 시간)"를 운영해, 교수·조교가 교과서를 읽어주면 학생들이 자기 공책에 필사하도록 했고, 학생들은 자기 책을 사기보다 중고 책을 공동 구매·공유, 더 부유한 학생을 위해 필사 알바를 하며 필사비를 벌고, 도서관·수도원 소장본을 빌려 직접 베끼는 방식으로 "텍스트 비용"을 낮추려 했다.학비 자체보다 "교과서와 필사 비용"이 대학 교육 전체 비용의 큰 축이었고, 가난한 학생에게는 가장 큰 진입장벽이었다.
| 청랑이 추천하는 다른 글을 읽고 싶다면 클릭하세요 |
지방 일반고 수능 채우는 사교육, 500년 전 조선 향교 실패의 반복
지방 일반고의 수능 대비 공백, 사교육이 채운다2026학년도 수능이 끝난 직후, 지방 소도시 공립 일반고 현장은 다르다. 이미 끝난 수능에 별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학생들의 대학 진학에서 수능
jwsmento.com
'청랑 세상 식견 > 청랑 이슈 식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톨릭 주교 자금 횡령과 성매매 체포로 보는 독신제의 역설 (1) | 2026.03.10 |
|---|---|
| 이란 저가 자폭 드론 vs 미국 사드 미사일, 백년전쟁을 바꾼 저비용 무기의 전쟁사 (0) | 2026.03.09 |
| '왕과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 부부, 역사 속 비슷했던 부부는? (1) | 2026.03.07 |
| 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역사 속 해협 통제로 일어난 전쟁은? (1) | 2026.03.06 |
| '왕과 사는 남자' 수양대군을 만든 한명회, 이름이 지명이 된 서울 '압구정'의 역사 (0) | 2026.03.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