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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중국 장유샤 숙청으로 되살아난 '공신 제거'의 역사적 패턴

by JWS 2026. 1. 27.

중국군 서열 2위 조사 발표, 2200년 전 한신의 운명과 겹치는 권력의 법칙

중국군 서열 2위인 장유샤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심각한 기율 위반과 불법 행위"를 이유로 조사 대상이 됐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전쟁 영웅에서 숙청 대상으로 전락하는 권력의 역설이 다시 한 번 국제 이슈로 부상했다. 이번 발표는 구체 혐의를 거의 밝히지 않는 중국식 공보 형태였지만, 당 규율과 국가 법률 위반을 병기해 사건 성격이 단순 비위가 아니라 권력과 안보 영역까지 걸쳐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을 키웠다. 외신들은 비공개 브리핑 등을 근거로 장 부주석이 중국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핵심 기술 데이터를 미국에 넘겼다는 의혹, 승진과 조달을 둘러싼 뇌물 수수, 파벌 형성 및 권한 남용 의혹 등이 거론된다고 전했으며, 연합참모부 참모장 류전리 등 다른 고위 장성으로 조사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시진핑 지도부가 최근 수년간 지속해 온 군 기강과 충성 재정렬 흐름과 연결되는데, 중국 당국이 혐의의 사실관계와 증거를 공개하지 않는 특성상 기율 위반이 실제로는 정책 노선과 권력 균형 문제를 포괄하는 정치적 프레이밍일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번 사안은 중국군 내 통제 강화와 대외 안보 신뢰 관리라는 두 축에서 파장을 낳을 가능성이 크며, 향후 중국이 어느 수준까지 추가 인사를 정리하고 어떤 혐의로 결론 내리는지가 핵심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2022년 11월 8일(현지시간) 오후 군복을 입고 군사위원회 합동작전지휘센터를 둘러본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중국중앙(CC)TV 캡처


한신의 비극: 천하를 안긴 장군이 역적이 되기까지

한신은 초한전에서 유방을 승리로 이끈 실질적 최고 군사 설계자였고, 제나라와 초나라 등 광대한 지역을 평정해 천하를 안겨 준 장군으로 인식되었다. 통일 직후 한신은 제왕과 초왕 등으로 책봉되어 독자적 군사력과 지방 지배 기반을 확보했는데, 이는 중앙에서 보면 한나라 내부의 또 다른 군벌로 보일 소지가 있었다. 괴통의 천하 삼분론처럼, 한신을 축으로 한 유방과의 권력 공유 구상 자체가 논의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군사와 영토 기반은 잠재적으로 황제권과 병립 가능한 수준으로 인식되었다. 유방은 통일 후 이성왕과 개국공신들을 단계적으로 견제하고 축소했고, 한신도 제왕에서 초왕, 후로 차례차례 강등되며 실질 군권과 영토를 빼앗겼다.

사료와 후대 평가는 유방이 한신의 군사적 재능과 독립적 세력을 두려워하여 언젠가 반역으로 비화할 씨앗으로 본 점을 반복적으로 지적한다. 여후 역시 한신과 팽월을 제거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후궁과 외척 정치의 이해관계와 결합해 군권을 쥔 외부 남성 공신 세력을 조기에 잘라내야 한다는 강한 위협 인식으로 작동했다.
기원전 197년 진희가 난을 일으키자, 한신은 직접 군사를 동원하지 않았음에도 난열의 밀고로 진희의 난에 내통하고 가담했다는 혐의를 쓰게 된다. 유방이 토벌 원정 중인 틈을 탄 여후는 한신을 장락궁으로 불러들여 체포하고 참수했으며, 삼족 멸문까지 단행하여 향후 군사적 재기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다.

여기서 핵심은 한신이 실제로 적극적 거병 세력이었는가보다, 이미 의심받던 대군사 공신에게 난을 빌미로 반역 프레임을 씌워 제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는 점이다.
유방은 한신 이후에도 대규모 군공을 세운 팽월을 무고를 빌미로 처형하고, 시신을 젓갈로 만들어 제후들에게 보내는 등 극단적 공포 신호를 보냈다. 영포는 한신과 팽월 숙청, 그리고 팽월 시신의 처리 방식을 보고 다음은 자신일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은밀히 군사를 모으다 실제 반란으로 나아가며 결국 토벌되어 제거되었다. 이 연쇄 과정은 한나라 초기 왕권이 전쟁기 군벌형 영웅을 제국 평시 체제의 잠재적 반역자이자 경쟁자로 재정의하고, 군권 집중과 지방 세력 약화를 위해 공포와 숙청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제나라 왕 한신


전쟁 영웅이 평화의 적이 되는 구조적 논리

초한전의 군공을 세운 인물들은 통일 이전에는 필수 동맹이었으나, 통일 이후에는 독자적 군사 기반과 명성을 가진 제2의 패자로 재인식되었다. 정권 공고화 단계에서 황제와 황실은 이들의 군권과 카리스마가 후대 반란 세력의 결집축이 될 가능성을 중시했고, 실제 반역 여부와 무관하게 반역 가능성 자체를 제거 대상으로 삼았다. 한신 제거는 이 구조적 위협 인식의 가장 상징적인 출발점으로, 이후 전한 내에서 군권은 점차 황실 직속과 중앙군 중심으로 재편되고, 개국 공신형 지방 군벌은 제도적으로 축소되고 제거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장유샤 사건 역시 이러한 역사적 패턴의 현대판으로 읽을 수 있다. 중국군 고위층이 연쇄적으로 공백을 맞을 경우 지휘, 조달, 훈련 체계의 단기 혼선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되지만, 시진핑 지도부는 단기적 혼란보다 장기적 충성 확보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 비리를 넘어 군 내부 네트워크 정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한신 이후 팽월과 영포로 이어진 연쇄 숙청의 논리와 유사하다.결국 전쟁 영웅이 평화의 적이 되는 이유는 단순한 개인의 야심이나 비리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군사적 카리스마, 독립적 지휘 체계, 그리고 부하들의 충성이라는 무형의 자산 자체가 중앙 권력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한신은 천하를 안겨 주었지만 그 공로가 곧 위협의 근거가 되었고, 장유샤 역시 군 서열 2위라는 위치 자체가 숙청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권력의 논리는 2200년이 지나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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