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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서울대 자연계 이탈과 의대 쏠림, 중세 시대와 비슷한 인재 구조 왜곡의 역사

by JWS 2026. 2. 25.

서울대 합격해도 등록을 포기하는 학생들늘어

2026학년도 서울대 자연계 정시 합격자 가운데 등록을 포기한 인원이 180명으로 집계되며 최근 5년 새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종로학원이 18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정시 전체 등록포기자는 224명이며, 이 중 자연계가 180명(80.4%)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입시업계는 등록포기자의 상당수가 타 의대에 중복 합격해 서울대 등록을 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의대 증원 전인 2023학년도(88명)와 비교하면 2배를 넘는 수치다. 학과별로는 첨단융합학부가 전년 대비 33.3% 증가한 16명이 등록을 포기해 정시 모집정원 대비 비율이 21.9%에 달했다. 전기정보공학부는 전년보다 25% 늘어난 15명이, 간호대는 48.3% 증가한 14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자연계열에서 등록포기자가 발생하지 않은 학과는 의예과·에너지자원공학과·통계학과 등 3곳에 불과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자연계 등록포기자의 대부분이 의대 중복합격자이며, 인문계 등록포기 역시 의대·치대·한의대 등과의 동시 합격 영향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종로학원은 2027학년도부터 지역의사제 도입이 본격화될 경우 서울대 자연계 정시 합격자의 '타 의대 이탈' 규모가 추가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최상위 학생들이 학문적 관심이나 연구 분야보다 특정 직업군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대학 서열이 아닌 직업 시장의 보상 구조가 선택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 아니다. 중세·근대 유럽에서도 최상위 인재들이 법학·신학으로 몰리며 다른 학문 분야가 '2선'으로 밀려났던 역사는, 권력과 보상이 집중된 분야가 어떻게 인재 구조 전체를 왜곡하는지 보여


법학·신학이 권력 직결 트랙이었던 이유

중세 대학은 기본적으로 2단계 구조였다. 1단계는 예술학부(artes)로 문법·논리·수사와 산술·기하·음악·천문을 가르쳤고, 2단계는 법학·의학·신학의 '상위 3개 학부(higher faculties)'로 구성되었다. 예술학부의 학위를 딴 뒤에야 상위 학부로 진급할 수 있었고, 이 세 학부는 사회적으로 별도의 위계를 부여받았다. 이 중 신학은 파리·옥스퍼드·케임브리지·로마 등 소수 대학에만 설치되었고, 교황청이 설치 권한을 통제할 정도로 정치적 민감성이 높았다. 파리대학은 '신학의 대학'으로 불릴 정도로 신학부가 압도적 위상을 가졌다. 토마스 아퀴나스·보나벤투라 등 교회 교리를 형성한 핵심 신학자들을 배출했고, 신학부 졸업생과 교수가 주교·수도원장·교황청 관료 등 고위 성직자로 승진하는 사례가 누적되었다. 13세기 파리대학 신학부 교수직 상당수가 탁발수도회·시스터시안 등 수도자 출신으로 채워졌고, 파리대학 출신은 '교회 고위 서품에 적격한 인재'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파리대학 출신들은 성직 수익(benefice)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까지 여겨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볼로냐 대학은 로마법과 교회법을 함께 가르치는 법학 중심 대학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학생이 몰려들었고, 이곳에서 발전한 로마법·카논법 해석은 세속 법정·도시 법원·군주 궁정에서 사용되는 '표준 법 기술'이 되었다. 도시 코뮌(자치도시)도 법학 교수의 권위를 빌려 도시 규약과 헌장을 정비했다. 13세기 후반부터 볼로냐 시 정부는 법학 교수들의 급여를 공금으로 지급하며, 이들을 도시 공공질서 유지의 핵심 자산으로 관리했다. 법학 학위는 교회법정·주교좌 법원·교황청 관료직으로, 시빌법은 왕실 법정·도시 행정·왕의 자문관·판사로 이어지는 경로를 열어주었다.


상류층이 선택한 전략적 투자

신학과 법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권력과 재정이 결합된 자리로 직결되는 통로였다. 신학 학위는 고소득 수도원·사원, 주교좌 교회 수익, 대학 내 교수직과 장학생 제도로 연결되었다. 법학 학위는 왕실·도시의 고위 행정직, 판사, 조세·재정 관리, 사법·행정 자문 등 '권력과 재정이 결합된 자리'로 이어졌다. 이 구조에서 상류층 자원이 특정 방식으로 집중되었다.귀족 가문은 첫째 아들에게 가문을 세습시키고, 둘째·셋째는 교회(신학)나 궁정·행정(법학)으로 출세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이때 파리·볼로냐 등 유명 대학의 법학·신학부가 선호되는 코스가 되었다. 도시 부르주아(상인·금융·공증인 가문)에게 법학 학위는 상업·금융 활동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도시 정치에 진입하는 수단이었기에 강한 투자 가치가 있었다. 예술·철학·자연학에 머무르는 것은 '교양'으로, 법학·신학으로 진입하는 것은 '가문을 위한 투자'로 인식되었다.


예술학부와 후에 분화한 철학·자연학은 주로 교양 교육, 상위 학부 진학을 위한 예비 교육, 소수의 학자적 경력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여겨졌다. 예술학부 학위만으로는 고위 성직·고위 행정직에 직접 진입하기 어려웠고, 실제로는 '예술학부 → 법학·신학'이라는 2단계 경로를 밟아야 상층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었다. 자연철학·수학·천문 등의 연구는 중요했지만, 금전·권력의 배분 구조에서 법학·신학보다 우선순위가 떨어졌다. 17세기 옥스퍼드 대학의 복장·서열 도해에서도 학위 체계의 최상층에 여전히 의학·법학·신학의 '세 상위 학부'가 배치되고, 그 아래에 예술학부·학사·석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조기 근대까지도 많은 유럽 대학에서 신학이 가장 권위 있는 학부, 법학·의학이 그 다음, 예술·철학은 기초 단계로 인식되었다. 이 위계가 그대로 '어떤 전공이 엘리트인가'라는 사회적 위상에 대응했고, 귀족·부르주아 자녀의 진학 선택을 구조적으로 유도했다. 제도가 만든 보상 구조가 개인의 선택을 압도하며, 학문 체계 전체가 특정 분야로 기울어지는 현상은 600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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