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 여파로 종량제 봉투 헛소문퍼지자 강력 대응 시사한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종량제 봉투 사재기를 촉발한 '봉투 수급 불안설'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 수사하라고 경찰에 지시하면서, 정부가 허위정보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3월 31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에게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가의 위기 극복을 방해하는 행위라며 "최초에 이런 헛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논란은 온라인상에서 종량제 봉투의 원료인 나프타 수급 문제로 봉투 공급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퍼지며 일부 지역에서 사재기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커졌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종량제 봉투는 행정 목적을 위한 사실상 공공요금 성격이어서 생산단가가 올라도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실제로 제작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오더라도 일반 봉투 사용이나 행정기관의 탄력적 수거가 가능하므로 미리 사둘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최근 유튜브와 SNS에서 제기된 '석유 90만 배럴 북한 유입설'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의 허위정보로 보고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혔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해당 의혹을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규정하며 형사 고발 등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 대통령 역시 실제 상황은 베트남이 원유 우선권 문제로 90만 배럴을 구매한 것인데, 이를 북한 반출설로 왜곡해 악의적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발언은 에너지와 생활물가 불안이 커지는 국면에서 정부가 허위정보를 단순 유언비어가 아니라 시장 신뢰와 공공질서를 흔드는 중대 사안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괘서(익명 벽보) 사건에서 정부를 비방하거나 민심을 선동하는 내용이 퍼지면 작성자를 색출해 역모로 처벌했던 역사는, 익명 유언비어 단속이 어떻게 정치적 탄압으로 변질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간신이 가득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영조 31년(1755) 전라도 나주 객사에 정권을 비방하는 괘서가 붙은 사건이 발생했다. 을해옥사 또는 윤지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소론 계열 인물 윤지가 주도한 역모 사건으로 규정되었고, 사건이 발각되자 윤지는 체포되어 처형되었으며, 관련 인물들도 대거 연루되어 소론이 크게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익명 벽서가 아니라, 정치적 선동과 역모 혐의가 결합된 대표적 사례로 기록되었다. 여러 기록에서 괘서의 요지는 조정의 간신 배척, 백성 고통 호소, 민생 구제 요구로 요약된다. 구체적으로는 "간신들이 조정에 가득하여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는 문장이 전해지며, 다른 전승에서는 가렴주구와 정치 비판이 강조된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조정의 대신들을 죽여서 나라를 바로잡자"는 과격한 정치 구호와, 영조·세자에 대한 비방이 함께 포함되었다고 정리된다. 조선의 괘서는 발견 즉시 불태우고, 내용만 상부에 보고하는 경우가 많아 원문이 온전히 남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임금이나 고위 관료를 직접 겨냥한 대목은 기록에서 "4자 흉언", "6자 흉언"처럼 완곡하게 처리되곤 해서, 오늘날에는 완전한 원문 복원이 어렵다.

익명 유언비어가 역모가 되는 순간
실록과 기사에서는 괘서의 문구를 통째로 적지 않고, 내용 일부를 "조정에 간신이 가득해서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졌다"는 식으로 요약된다. 나주 괘서 사건의 핵심은 내용의 진위가 아니라, 익명으로 정권을 비방하고 민심을 선동했다는 행위 자체가 역모로 규정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었는지, 간신이 조정에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부 비판 내용을 익명으로 퍼뜨렸다는 사실만으로 작성자와 관련자들이 대거 처벌받았다. 조선 정부는 괘서 사건을 단순 유언비어가 아니라 국가 질서를 흔드는 중대 사안으로 보았고, 작성자를 색출해 엄벌에 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나주 괘서 사건으로 인해 소론 세력을 탄압하는 명분으로 활용되었고, 실제 괘서 작성자가 누구인지,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보다 누구를 연루시킬 것인가가 더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되었다. 조선시대 괘서 사건이 결국 정치적 탄압 수단으로 변질되었듯, 허위정보 단속 역시 정권 비판 억압 도구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 250년 전 나주 괘서 사건의 교훈은, 익명 유언비어 단속이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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