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브랜드가 세계를 끌어당기다. 유행이 아닌 문명의 법칙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870만 명. 국내 거주 외국인 280만 명. 합치면 2000만 명 이상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소비했다. 그런데 이들이 가는 곳이 경복궁과 명동이 아니라 성수동 골목, 한강 선착장, 편의점, 올리브영, 다이소다. 명동과 홍대의 일부 매장에서는 외국인 매출 비중이 80~90퍼센트에 달하며 한국 유통업의 매출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수입 219억 달러. 카드 결제액 전년 대비 29퍼센트 증가했다. 이 숫자들이 말하는 것은 K팝과 K드라마의 팬덤을 넘어섰다는 증거이다. 한국인의 일상 자체, 먹는 것, 바르는 것, 사는 방식이 세계인이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것이 됐다. 그와 동시에 서울에서도 각국의 다양한 음식과 문화가 명동 시장을 채워가고 있다. 1200년 세계 최고의 도시 당나라(唐)의 수도 장안(長安)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구 100만의 도시, 세계가 몰려들다
8세기, 장안은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인구 100만 명. 오늘날 중국 베이징 인구가 2000만명이니 규모는 작아 보이지만, 당시 세계 어느 도시도 이 규모에 근접하지 못했다. 로마가 기울고 바그다드가 막 성장하던 시절, 장안은 압도적으로 세계의 중심이었다. 장안으로 가는 길이 실크로드(Silk Road)였다.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인(Sogdians), 페르시아(Persia) 상인, 아라비아 상인들이 낙타에 물건을 싣고 장안으로 들어왔다. 서시(西市)라는 시장에 가게를 열었다. 비단, 보석, 향료, 진귀한 약재가 거래됐다. 한국 고대 국가인 고구려·백제·신라의 유학생과 사신들도 당나라 문물을 배우러 왔다. 일본에서 파견된 견당사(遣唐使)도 장안에서 10년을 살다 돌아갔다. 신라의 승려 혜초(慧超)는 장안을 거점으로 인도와 서역을 여행하고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겼다. 장안의 외국인들은 관광지만 돌아보지 않고, 장안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 들었다.
서시(西市)와 당나라의 교역 구조
장안은 계획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바둑판 모양의 방(坊)으로 나뉘어 있었고, 동시(東市)와 서시(西市) 두 곳의 공식 시장이 있었다. 서시는 서역 상인들이 집결하는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다. 소그드인은 중앙아시아 출신의 상인 민족으로, 실크로드 교역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들은 장안에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고, 자신들의 신앙(조로아스터교)과 음악, 춤을 가져왔다. 서시는 고대의 면세점이자 국제 박람회장이었다. 오늘날 명동의 외국인 매출 비중이 80~90퍼센트에 달한다는 것은, 서시가 다시 열린 것과 유사한 구조다.

당나라 사람 서역 문화에 열광하다
장안에서 벌어진 더 흥미로운 일은 당나라 사람들이 외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호풍(胡風), 즉 북방·서방 민족의 바람이라고 불렀다. 당나라 귀족 여성들 사이에서 호복(胡服)이 유행했다. 소매가 좁고 활동적인 중앙아시아식 옷을 입고 말을 타는 것이 세련된 것으로 여겨졌다. 호병(胡餠), 즉 중앙아시아식 빵이 장안 시민의 주식 중 하나가 됐고, 포도주가 들어왔다. 당태종(唐太宗)이 직접 서역에서 양조법을 배워오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후추 같은 향신료가 요리의 맛을 바꿨다. 호선무(胡旋舞), 즉 서역의 뱅글뱅글 도는 춤이 연회의 핵심 콘텐츠가 됐다. 비파(琵琶)는 서역에서 들어온 악기였지만, 당나라 음악의 중심이 됐다.
호풍(胡風)
호(胡)는 원래 북방 유목민족을 가리키는 한자였지만, 당나라 시대에는 서역 전반의 이질적인 문화를 통칭하는 말이 됐다. 호풍은 상류층에서 시작해 서민층까지 퍼졌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외부 문화가 강제로 유입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 소비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장안의 종교 다양성, 개방적인 당나라 면모
장안에는 불교 사원과 도교 사원 외에도 페르시아에서 온 조로아스터교(拜火敎), 마니교(摩尼敎), 중동에서 전래된 경교(景敎,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사원이 함께 있었다. 다른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같은 도시에서 공존했다. 이 개방성이 장안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 핵심이었다. 어떤 나라 출신이든, 어떤 신을 믿든, 어떤 언어를 쓰든 장안에서는 살 수 있었다. 그 포용성이 인재와 자본과 문화를 끌어당겼다. 투르크족, 페르시아인, 소그드인이 당나라 조정의 관료로 등용됐다. 외국인을 배제하지 않고 활용했다. 이것이 당나라가 200년 이상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군림한 이유였다. 로마도 그러했고, 세계 대제국 몽골도 이와 같은 길을 걸어 강대국으로 군림했다.
경교(景敎)와 장안의 다양한 종교
경교는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 기독교의 당나라 이름이다.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뒤 동방으로 밀려난 이 종파는 페르시아를 거쳐 실크로드를 따라 장안까지 전파됐다. 당태종 시대인 635년에 장안에 경교 사원이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다. 장안에는 조로아스터교 사원도 여러 곳이 있었고, 페르시아 출신 상인들의 집단 거주지도 있었다. 이 종교적 다양성은 당나라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포용 정책의 결과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면서 장안에 머물 수 있었기에, 세계 각지의 인재와 자본이 모여들었다.
K브랜드가 호풍이 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성수동 골목을 걷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고, 올리브영에서 선크림을 고른다. 이것은 단순 관광이 아니다. 한국인의 일상 방식을 소비하는 것이다. 당나라 사람들이 호병을 먹고 호복을 입었던 것처럼, 세계인이 한국의 일상을 원하고 있다. K팝과 K드라마가 촉매였지만, 지금은 그것을 넘어섰다. 한국의 먹는 방식, 바르는 방식,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가 소비의 대상이 됐다. 동남아 중국 일본을 가도 한국 여성 화장법을 따라하면서 대화를 하지 않으면 한국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 정도이다. 장안의 서시에서 소그드 상인이 향료를 팔던 것처럼, 성수동에서 외국인이 디저트 카페를 찾는다. 1200년의 간격이 있지만, 문명이 작동하는 무법은 지금도 똑같다.
인바운드 관광(Inbound Tourism)
인바운드 관광은 외국인이 국내에 들어와 소비하는 것을 가리킨다. 지난해 한국의 외국인 관광수입 219억 달러는 한국이 수출로 벌어들이는 것과 같은 외화 유입이다. 관광은 상품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이 국내로 들어와 직접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면세점·백화점 중심의 대형 소비에서 편의점·골목상권·식음료 업종 위주의 소액 다빈도 소비로 이동한다는 것은, 소비가 특정 대기업에 집중되지 않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도 분산된다는 의미다. 장안의 서시에서 소그드 상인부터 장안 토착 상인까지 함께 이익을 누렸던 것처럼.
K 컬쳐 지속 가능한 힘, 당나라에서 장안에서 찾아
당나라는 755년 안사의 난(安史의 亂)으로 흔들렸다. 장안의 황금기는 그렇게 끝났다. 개방성과 다양성이 만들어낸 번영이, 그 개방성이 가져온 내부 갈등으로 무너졌다. 번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역사는 반복해서 말한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를 목표로 내세웠다. 양적 성장에서 품격 있고 지속가능한 관광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맞는 말이다. 장안이 단순히 물건이 많은 시장이 아니라 세계의 지식과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었기에 200년을 버텼듯이, K브랜드도 콘텐츠 소비를 넘어 한국 사람들의 삶의 방식 자체가 매력이 되어야 오래간다. 1200년 전 장안이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은 어떤 정책 때문만이 아니었다. 장안 사람들이 외부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름을 흡수하고, 그 위에서 자신들만의 것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K브랜드가 다음 200년을 바라보려면, 그 문법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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