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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세 박사, 52세 교수 임용 꿈을 이룬 박은정 교수와 플라톤의 공통점은?

by JWS 2025. 8. 4.

공부에 미쳤던 한 교수의 이야기

박은정 경희대 의대 교수는 가난과 경력단절, 명문대 미출신이라는 편견에도 42세에 박사 학위를, 52세에 교수 임용이라는 꿈을 이뤘다. 그녀는 아이의 백혈병 오진, 어머니와 시아버지의 암 투병 등 가족의 위기 속에서 공부에 매달리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희생적 지원 아래 독성학 연구를 선택해 암과 치매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 몰두했다.정밀한 연구 과정에서 수차례 과제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세계 상위 1% 연구자로 인정받았다.

박 교수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외적 조건으로 연구를 포기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 정년까지 단 7년 남은 시간이 아깝다며 “남들이 뭐라 하든 딱 3년만 미쳐 보라”고 후배들을 독려한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겪은 역경과 열정이 진정한 연구 동력임을 강조하며 남은 시간에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다짐한다. 평생 하나에 몰두한 박은정 교수의 여정은, 진리를 향한 열망 하나로 고난을 견뎌낸 플라톤의 길과 닮아 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미친 듯한 집중'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었을까?

박은정 경희대 교수(오른쪽)가 1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에게 연구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철학의 씨앗을 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체육, 음악 등 그리스의 전통적인 교양 교육을 두루 익혔고, 특히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였다. 청년기에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대화법과 진리 탐구에 대한 열정에 깊이 감화받은 플라톤은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철학자로서의 기초를 다져나갔다. 이 시기는 플라톤이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과 사고의 틀을 형성한 중요한 성장기였다.

플라톤 흉상


절망 속에서 진리를 찾다

BC 399년 스승 소크라테스가 불경죄와 청년 타락죄로 사형을 당하면서 플라톤의 인생에 시련이 찾아왔다. 정의롭고 지혜로운 스승이 부당하게 죽음을 맞는 것을 목격한 플라톤은 깊은 절망과 회의에 빠졌다. 아테네의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낀 그는 고향을 떠나 방랑의 길에 나섰다. 이집트, 시칠리아, 남부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철학 사상을 접하고 연구에 매진하였다. 이 시기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깊은 성찰은 훗날 그의 철학 체계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현실 세계의 불완전함과 대비되는 완전한 이데아 세계에 대한 사상이 이때 싹트기 시작하였다.


철학의 전당을 세우다

40대에 접어든 플라톤은 BC 387년경 아테네 근교의 아카데메이아에 자신만의 학원을 설립하였다. 이곳은 후대 모든 학문 기관의 어원이 된 '아카데미'의 시초로, 세계 최초의 조직적 교육기관 중 하나가 되었다. 플라톤은 이곳에서 산술, 기하학, 천문학 등 수학적·과학적 교양과목을 체계적으로 가르쳤으며, 특히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으로 들어오지 마라'는 간판을 걸어 학문적 엄정함을 추구하였다. 25년에 걸친 단계적 교육과정을 통해 변증법적 사고력을 기르고, 궁극적으로는 '좋음의 이데아'를 인식하는 철인왕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 그의 주요 저작들이 완성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들을 길러내며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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