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케이크도 금지? 역사가 말하는 ‘스승의 날’의 진짜 유래
스승의 날, 학생들이 만든 케이크를 교사가 먹으면 불법이라니
경북교육청이 스승의 날을 앞두고 안내문을 올렸다. '헷갈리는 청탁금지법 완벽 정리.' 내용은 이랬다. 학생들이 케이크 파티를 열어 서로 나눠 먹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교사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카네이션은 학생 대표가 공개적 자리에서 전달하면 되지만, 개별 전달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논란이다. 기원전 343년, 13세의 알렉산드로스(Alexandros)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를 스승으로 맞았다. 그리고 훗날 세계를 정복한 그는 스승에게 감사의 표시로 코끼리를 보냈다. 또 연구 자금으로 800탈란트(현대 가치 수천만 달러)를 지원했다.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채집한 동물과 식물 표본을 배로 실어 보내기도 했다. 스승의 학교를 세우기 위해 국가 자원을 투입했던 것이다. 2300년 전 스승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현하는 방식은 지금과 달랐다.

미에자의 숲, 한 시대를 만든 교육
기원전 343년,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왕 필리포스 2세(Philippos II)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불러들였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Platon)의 아카데미아(Academia)를 떠나 독자적인 철학을 펼치던 40대 중반의 학자였다. 필리포스는 아들의 교육을 그에게 맡겼다. 교육 장소는 미에자(Mieza)의 숲과 정원이었다.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를 읽고, 자연과 철학을 탐구하는 환경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철학·수사학·의학·생물학·지리학을 가르쳤다. 7년간의 교육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평생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s)》를 베개 곁에 두고 다녔다. 그 책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이 달려 있었다. 스승의 손길이 제자의 삶 전체에 새겨진 것이다.
뤼케이온(Lykeion)과 알렉산드로스의 후원
뤼케이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Athenai)에 세운 학교다. 기원전 335년 개설됐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함께 고대 그리스 최고의 학문 기관으로 꼽힌다. 알렉산드로스는 뤼케이온 운영을 위해 약 800탈란트를 지원했다. 탈란트(talent)는 고대 그리스의 화폐 단위로, 800탈란트는 현대 가치로 수천만 달러에 해당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원정 중 채집한 동식물 표본과 수만 권의 서적을 스승에게 보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사 연구, 특히 《동물지(Historia Animalium)》는 이 표본들을 바탕으로 완성됐다. 세계를 정복한 자가 스승의 연구를 돕고자 했다.


사제간의 갈등도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계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균열이 생겼다. 기원전 327년,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 칼리스테네스(Kallisthenes)를 처형했다. 칼리스테네스는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왕처럼 신하들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 프로스키네시스(proskynesis) 의례를 요구하자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를 반역으로 보고 처형했다. 스승의 조카를 죽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또 다른 균열은 사상에서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페르시아인과 이방인을 '바바리안(barbarian)', 즉 야만인으로 봤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를 정복한 뒤 페르시아 문화를 수용하고 페르시아 귀족과 통혼(通婚)했다. 스승의 가르침을 넘어선 것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넓은 세계를 봤고 헬레니즘 문명을 만들어냈다.
헬레니즘(Hellenism)
헬레니즘은 알렉산드로스의 원정 이후 그리스 문화가 오리엔트(동방) 문화와 융합되며 형성된 새로운 문명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정복한 땅에 그리스 도시를 세우고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삼았다. 동시에 페르시아 의복을 입고, 페르시아 귀족 딸과 결혼하고, 현지 풍습을 존중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친 그리스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좋은 스승은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는 교육의 역설이 여기에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으로 재구성했고 헬리니즘 문화의 탄생을 낳았다.
청탁금지법, 스승의 날을 규정해버리다
2016년 시행된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은 공직자·언론인·교육자에 대한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를 금지했다. 교사에게 적용되는 상한선은 1인당 5만 원. 5만 원을 넘는 선물은 수수 자체가 위법이다. 케이크 한 판이 5만 원을 넘으면 교사가 한 조각을 먹는 것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법의 취지는 촌지(寸志) 문화, 즉 학부모가 교사에게 은밀하게 금품을 건네는 관행을 끊으려 한 것이었다. 실제로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교육 현장의 촌지 문화는 크게 줄었다. 법이 목적을 달성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경북교육청의 안내문이 보여주는 장면은 아쉬움도 크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위해 케이크를 사 왔지만 선생님은 먹을 수 없는 현실. 아이들끼리 먹는 것을 선생님이 바라보는 모습이 사제지간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청탁금지법(靑濁禁止法)
청탁금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2015년 제정, 2016년 9월 시행됐다. 적용 대상은 공직자, 언론인, 교육자(사립학교 포함)다. 금품 수수 상한은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이다. 교사에게 적용될 때 쟁점은 학생이 교사에게 주는 선물이 '직무 관련성'이 있는지다. 학생과 교사는 명백히 직무 관계이므로, 5만 원을 넘는 선물은 수수 금지 대상이 된다. 법원은 학생들이 공동으로 구매한 선물도 전달받는 교사에게 법적 책임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케이크 한 판을 5만 원 이하로 맞추지 않으면 교사가 받을 수 없는 이유다.
스승의 날이 만들어진 이유
한국의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단이 병중에 있는 선생님들을 위문하면서 시작됐다. 1963년 5월 26일 전국적인 기념일로 확대됐다가,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날짜가 바뀌었다. 그 시작은 선생님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었다. 병든 선생님을 위문하러 간 학생들. 케이크나 카네이션이 아니라, 그냥 보고 싶어서 찾아간 것이었다. 그 마음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이 스승의 날이었다. 알렉슨드로스 대왕도 지금의 한국에 있었다면 청탁금지법의 기준에 벗어나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스승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물질로 표현하는 것도 잘못되었지만 스승을 향한 진심을 선물에 담아 드리기도 어려워진 세태가 씁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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