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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대입 개편안, 200년 전 나폴레옹의 선택과 닮았다

JWS 2025. 12. 13. 19:00

수능 폐지하고 서술형 평가로… 서울교육청의 파격 제안

서울시교육청이 폭탄선언을 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10일 "2028학년도부터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2040년에는 수능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명확하다. 객관식 중심의 수능 대신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도입하고, 학생부 중심으로 대학이 자율 선발하는 체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됐다. 2028학년도부터 내신 절대평가를 시작하고, 2033학년도부터는 수능과 내신에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수시와 정시를 통합해 학생부 중심 전형으로 일원화하고, 자사고·외고의 지역균형 선발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최종 목표는 2040년 수능 완전 폐지다.배경은 학령인구 급감이다. 대학 진학 대상 인구가 2000년 82만 명에서 2040년 26만 명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행 입시 제도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교육청은 "고교학점제 취지에 맞춘 고교-대학 선순환 체제"를 강조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그런데 이 제안, 낯설지 않다. 혼란스러운 교육 시장을 국가가 재정비하고, 서술형·논술형 평가로 엘리트를 선발한다는 구상. 200년 전 나폴레옹이 바칼로레아로 실현했던 바로 그 시스템이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이 10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미래형 대입 제도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나폴레옹, 혁명 이후 혼란을 바칼로레아로 정리하다

프랑스 혁명은 왕정뿐 아니라 교육 체제까지 무너뜨렸다. 대학과 교회가 운영하던 학교들이 해체되면서, 지역마다 사립기관마다 제각각의 교육과 시험이 난립했다. 국가가 인정하는 통일된 졸업 기준도, 입학 자격도 사라졌다. 교육 시장은 말 그대로 무정부 상태였다.나폴레옹은 이 혼란을 기회로 삼았다. 1802년 리세를 설립하고, 1808년 제국대학 체제를 구축해 초등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을 하나의 국가 조직 아래 두었다. 교원 임용, 교과 내용, 학위, 시험까지 중앙정부가 일원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그 핵심에 바칼로레아가 있었다.

바칼로레아는 "중등 교육을 마쳤음을 국가가 공인하고, 대학 진입을 허가하는 1차 관문"으로 설계됐다. 리상스, 박사학위와 함께 3단계 학위 체계를 만들었지만, 바칼로레아가 가장 중요했다. 엘리트 선발의 첫 번째 관문이자, 출신과 신분 대신 능력으로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 근대적 학력 자격제도의 시작이었다. 나폴레옹의 의도는 분명했다. 계급과 지역을 넘어 국가에 충성하는 엘리트를 길러내는 것. 유능한 관리, 장교, 법률가를 확보하기 위해 바칼로레아는 인재 풀을 선별하는 국가 시험으로 작동했다. 어디서 어떤 학교를 나왔든, 같은 국가시험을 통과하면 같은 학력을 인정받는 구조. 지역과 교파, 사립기관의 자율적 평가를 국가 기준 아래 포섭하는 강력한 중앙집권화였다.


구술과 논술 중심, 사고력을 평가한 바칼로레아

초창기 바칼로레아는 철저히 엘리트를 위한 시험이었다. 1808년 제정 당시에는 문학 바칼로레아 하나만 존재했고, 응시자는 리세 상급 과정이나 사교육을 받은 중상류층 남학생들이었다. 1809년 첫 시험 합격자는 고작 31명. 극소수만 통과할 수 있는 좁은 문이었다.시험의 핵심은 구술이었다. 수험생들은 교수급 심사위원단 앞에 섰다. 라틴어, 그리스어, 철학, 역사, 논리, 수학 기초 등 고전 교양 과목에 대해 구두로 답변해야 했다. 주어진 고전 텍스트를 읽고 번역·해석하거나, 철학적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변하는 방식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답변의 내용뿐 아니라 논리와 언어 표현까지 종합 평가했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했는지가 아니라, 조리 있게 사고하고 서술할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프랑스식 논술형 평가의 원형이다.필기시험은 1830년대 이후 비중이 커졌다. 1840년에 이르러 철학과 문학에서 장문의 논술형 에세이를 제출하는 서면시험이 공식화됐다. 구술과 서술형이 결합된 이 구조는 이후 프랑스 교육의 정체성이 됐다.시험은 파리 등 주요 대학 도시의 공식 시험장에서 치러졌다. 제국대학이 임명한 교수, 교장, 검열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문제와 채점 기준은 중앙에서 통일적으로 정했다. 지역에 관계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이었다.


200년 전 실험이 던지는 질문

바칼로레아는 성공했을까? 200년이 넘은 지금까지 프랑스 교육의 DNA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성공이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지나치게 고전 교양 중심이라는 지적, 엘리트주의적이라는 비판,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 정부는 2021년 대대적인 바칼로레아 개혁을 단행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서울교육청의 제안도 마찬가지 질문에 직면할 것이다. 서술형·논술형 평가가 정말 학생의 사고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채점의 공정성은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사교육 시장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학들은 자율 선발 능력이 있는가?나폴레옹은 혼란 속에서 바칼로레아를 만들었다. 2040년 수능 폐지를 목표로 한 서울교육청의 제안도 비슷한 혼란 속에서 나왔다. 200년 전 실험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제도 개편의 성공은 설계가 아니라 실행에 달려 있다는 것.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인 개혁은 또 다른 혼란을 낳을 뿐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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