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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호 병역 의무 위반, 조선 시대의 군역 제도는 어땠을까?

JWS 2026. 5. 5. 19:00

병역 의무, 누구의 것인가

송민호 사건이 다시 불을 지폈다. 위너 멤버 송민호가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는 동안 102일을 무단결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검찰은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공판에서 그는 양극성 정동장애와 공황장애, 경추 파열을 호소하며 선처를 구했다. 사실관계에 큰 다툼이 없었던 만큼 재판은 첫 공판에서 결심까지 빠르게 진행됐다. 이 사건이 단순한 연예인 일탈로 볼 수 없다. 매번 반복되는 유명인의 병역 논란 뒤에는 언제나 같은 질문이 따라붙는다. 병역 의무는 정말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가. 그 답을 찾으러 400년 전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조선의 군역, 원칙은 평등했다

조선의 기본 원리는 양인 개병제였다. 일정 연령의 양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역을 져야 했고, 이는 국가 방위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의무였다. 원칙만 보면 꽤 평등한 제도였다.문제는 실제 운영이었다. 성균관·향교 유생 등록, 관직과 연결된 신분 활용, 도첩을 얻어 승려가 되는 방식, 족보 위조로 신분을 올리는 방식까지 회피 수단은 매우 다양했다. 돈과 인맥이 있는 집안은 언제나 예외의 문을 열 수 있었다. 광해군 4년에는 병역을 피하려고 지방 훈도 임명장을 위조한 김제세 사건이 있었고, 호패 위조는 원칙상 사형에 해당했지만 양반층의 경우 처벌이 상소나 경고로 마무리되는 일이 잦았다.영조는 영의정 김재로의 "양반은 병역을 하지 않는다"는 발언에 불쾌함을 드러내며 후손까지 군역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언급했지만, 실제로 강제하기는 어려웠다. 원칙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빠져나간 자리는 누군가 메워야했다

군역 회피의 결과는 단순하고 잔인했다. 위에서 빠진 부담은 아래로 내려갔다. 양반과 유생이 군포를 내지 않으면, 그 공백은 평민층이 더 많이 짊어지는 방식으로 채워졌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군포 부담에 짓눌린 농민층의 피로가 심해졌고, "왜 어떤 집단은 빠지고 나만 내야 하느냐"는 불만이 커졌다.이 불만은 군역 하나에 그치지 않았다. 조세와 역 부담 전반에 대한 반감으로 번졌고, 결국 국가에 대한 신뢰 자체를 침식했다. 균역법 논의가 나온 것도 이 위기가 임계점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의무가 불공평하게 배분될 때, 무너지는 것은 국방력만이 아니다. 국가가 시민을 설득할 수 있는 언어, 즉 제도의 정당성이 함께 무너진다. 균역법도 세도정치시대에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며 조선의 군사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의 무력에 힘 한 번 못써보고 식민지배를 받는 아픈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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