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 총파업 선언, 진나라 '군공수작제'가 던지는 보상의 본질
17시간 협상, 결렬. 18일간 총파업하는 삼성전자 노조
2026년 5월 13일 새벽,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 17시간에 걸친 삼성전자 노사 사후조정이 결렬됐다. 초기업노조 최승호 위원장은 "바뀐 안건이 없는 상황에서 조정 연장을 하는 것은 총파업 동력을 저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결렬 선언을 했다."라고 전했다. 노조는 예고대로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쟁점은 성과급 상한 폐지와 제도화다. 이 싸움의 본질은 누가 회사의 이익을 얼마나 가져가느냐의 문제다. 2300년 전 진나라 상앙(商鞅)도 같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내놓은 답이 진나라를 천하통일로 이끌었다.

싸워도 얻을 게 없는 구조가 조직을 망친다
상앙변법(商鞅變法) 이전 진나라의 구조는 이랬다. 귀족(卿大夫)은 태어나면서부터 작위와 토지와 관직을 세습했다. 평민(庶人)은 아무리 용감하게 싸워도,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신분 상승이 불가능했다. 전쟁의 실제 주력인 평민 병사들에게 동기 부여가 전혀 없는 구조였다. 상앙은 이 구조의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귀족은 싸울 이유가 없고, 평민은 싸워도 얻을 게 없었다.
성과급(成果給)의 종류와 쟁점
성과급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재량적 성과급은 회사가 경영 판단으로 지급 여부와 규모를 결정한다. 제도적 성과급은 영업이익의 몇 퍼센트처럼 명확한 기준에 따라 자동 지급된다. 삼성전자의 현행 방식은 재량적 성과급에 가깝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제도적 성과급으로의 전환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최 위원장이 "SK하이닉스가 경직된 제도화를 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언급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제도화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다. 직원들이 얼마를 받을지 미리 알 수 있어야 동기 부여가 된다.
군공수작제, 공헌을 측정 가능하게 만들다
기원전 356년 상앙이 설계한 군공수작제(軍功授爵制)의 핵심은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었다. 전공(戰功)에 따라 오를 수 있는 20단계의 사다리가 있었다. 기준은 냉혹할 만큼 단순했다. 적군의 목(首級) 하나를 베어 오면 작위 1등급이 올랐다. 1등급이 오르면 땅 1경(頃, 약 4.6헥타르)과 집 1채가 추가로 지급됐다. 5등급(大夫) 이상이 되면 특정 마을의 세금을 개인 수입으로 받는 식읍(食邑)이 생겼다. 모든 것이 공개됐고, 측정 가능했고, 약속대로 지급됐다. 병사들은 자신이 얼마나 싸우면 얼마를 받는지 정확히 알았다. 이 예측 가능성이 진나라 병사들을 맹렬하게 싸우게 만들었다. 《전국책(戰國策)》의 묘사다. "진나라 병사들은 갑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맨발로 뛰어들며, 적의 목을 겨드랑이에 끼고 포로를 질질 끌며 달려든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보상 체계가 조직의 전투력을 극대화했다.
논공행상(論功行賞)과 제도의 신뢰성
논공행상은 공로를 따져 그에 맞는 상을 주는 것이다. 군공수작제가 작동하려면 논공행상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신뢰가 전제돼야 했다. 상앙은 이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 변법 시행 초기, 백성들이 새 법을 믿지 않자 도성 남문에 나무를 세우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10금을 주겠다"고 공고했다. 아무도 믿지 않자 50금으로 올렸다. 한 사람이 옮기자 즉시 50금을 줬다. 법이 약속대로 집행된다는 것을 실증한 것이다.

귀족도 예외가 아니라 혁명이었다
군공수작제가 진정한 혁명인 이유는 평민을 올려주는 것뿐 아니라, 귀족을 내려뜨리는 조항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전공이 없는 귀족은 작위와 특권을 박탈당했다. 귀족 자제라도 전쟁에서 공을 세우지 않으면 족보에서 귀족 지위가 삭제됐다. 왕족도 예외가 없었다. 상앙은 태자의 스승을 처벌하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이 원칙을 관철시켰다.
군공수작제 (軍功受爵制)
군공수작제는 군사적 공훈에 따라 작위와 신분을 부여하는 고대 제도이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상앙이 가장 체계적으로 정비하였다. 작위는 1등부터 20등까지 세분화되어 있었다. 적군의 수급을 베어오는 등 전공을 세우면 작위가 올랐다. 작위에 따라 토지, 가옥, 노비 등 보상이 법으로 규정되었다. 출신 혈통보다 실제 전공을 우선시하는 능력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이를 통해 기존 귀족 중심의 신분 질서가 약화되었다. 병사들의 전투 의지를 높여 진나라 강군의 원동력이 되었다.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화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의 삼국시대에도 유사한 군공 포상 제도가 운영되었다.
17시간 협상과 결렬 삼성전자가 찾아야할 해답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삼성전자 노사는 17시간 동안 협상이 진행 되었으니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삼성전자는 대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상앙의 변법도 처음에는 저항에 부딪혔다. 기존 귀족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상앙은 원칙을 양보하지 않았다. 태자의 스승까지 처벌했다. 법이 한번 흔들리면 제도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노조가 17시간 끝에 결렬을 선언한 것도 같은 판단이었을 것이다. 남은 시간동안, 삼성전자 사측이 선택해야 할 것은 시간을 더 끄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진나라는 보상을 제도화하고 100년 만에 천하를 통일했다. 군공수작제 시행 후 진나라는 100여 년에 걸쳐 전국 7웅을 차례로 격파하고 기원전 221년 천하를 통일했다. 보상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조직 전체를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 결과였다. 순자(荀子)는 진나라를 보며 비판했다. "공을 밝히되 인의(仁義)가 없다." 효율은 있지만 인간적 온기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진나라는 통일 후 15년 만에 망했다. 전쟁이 없어지자 전공을 세울 통로가 막혔고, 그 불만이 반란으로 이어졌다. 성과급을 제도화하면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성과급만이 유일한 동기 부여 수단이 되면, 성과가 나지 않는 시기에 삼성은 또 흔들린다. 2300년 전 진나라 멸망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가 이 싸움에서 찾아야 할 답은, 병사들이 맨발로 뛰어들게 만들었던 그 제도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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