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 '신석기' 발언, 토기와 농경이 엇갈린 동서양 신석기 문명사

협박인가, 선전포고인가. 둘 다다.
2025년, 트럼프는 이란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협상하지 않으면 신석기 시대로 만들어버리겠다." 폭탄 발언에 세계가 술렁였다. 그런데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신석기 시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처절한 시대였는지를.

인류가 처음 멈춰 선 땅, 비옥한 초승달 지대
지금으로부터 약 1만 1500년 전. 마지막 빙하기(氷河期)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자, 인류는 수십만 년의 유랑(流浪)을 끝낼 조건을 갖추게 됐다. 그 무대는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 오늘날의 이라크·시리아·팔레스타인·터키 남부 일대였다. 기원전 9500년경, 이 지역에서 인류 최초의 정착 농경(定着農耕)이 시작됐다. 밀(小麥)과 보리(大麥), 렌틸콩(lentil)을 재배했고, 양(羊)·염소(山羊)·소(牛)·돼지(豚)를 가축화(家畜化)했다. 터키 남동부의 차탈회위크(Çatalhöyük, 기원전 7500년경)는 이 시대의 대표적 정착촌(定着村)으로, 수천 명이 모여 살며 종교 의례(宗敎儀禮)와 예술(藝術)까지 발전시켰다. 서양 신석기(西洋新石器時代)는 농경과 목축(牧畜)이 먼저 자리를 잡고, 토기(土器)와 간석기(磨製石器)가 그 뒤를 따랐다. 잉여 생산물(剩餘生産物)이 쌓이자 역할이 나뉘었고, 역할이 나뉘자 계층(階層)이 생겼다. 문명(文明)의 씨앗이 바로 이 순간 심어졌다. 이후 신석기 농경 문화는 아나톨리아(Anatolia)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기원전 4000년경에는 영국까지 도달했다.

동양은 달랐다. 토기가 먼저 왔다.
같은 시기, 동아시아(東亞細亞)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신석기가 전개됐다. 서양에서는 농경이 먼저 오고 토기가 뒤따랐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순서가 뒤집혔다. 토기(土器)가 먼저 등장하고, 농경은 그 뒤를 이었다.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중국 후난성(湖南省) 위찬옌(玉蟾岩) 동굴에서 출토된 것으로, 연대가 기원전 1만 6000년~1만 8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수렵·채집(狩獵採集) 단계였던 인류가 토기를 만들어 식량을 저장하고 조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점이 동아시아 신석기(東亞新石器時代)가 서양 신석기와 구분되는 점이다. 정착하기 전에, 저장(貯藏)을 먼저 배웠다. 중국의 허무두(河姆渡) 문화(기원전 5000년경)에서는 벼(稻) 재배의 흔적이 발견된다. 양쯔강(揚子江) 하류를 중심으로 한 이 문화권에서 인류는 최초로 논농사(水田農業)를 시작했다. 같은 시기 황하(黃河) 유역의 앙소(仰韶) 문화에서는 조(粟)와 기장(黍)을 재배했다. 서양이 밀과 보리의 문명이었다면, 동양은 쌀과 조의 문명이었다. 작물(作物)부터 달랐고, 그 위에 쌓인 문명의 결도 달랐다.

한반도, 바다와 강이 먹여 살린 사람들
한국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한반도(韓半島)의 신석기는 서양도 중국도 아닌,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대표 유물은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 櫛文土器)다. 표면에 빗살 같은 기하학적 문양(紋樣)이 새겨진 이 토기는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문화권의 산물이었다. 사람들은 강가와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했다. 움집은 땅을 파고 내려가 기둥을 세운 반지하(半地下) 구조로, 한반도의 혹독한 겨울을 버티기 위한 지혜였다. 생계는 어로(漁撈)·사냥(狩獵)·채집(採集)이 중심이었다. 부산 동삼동(東三洞) 패총(貝塚, 조개무지), 서울 암사동(岩寺洞) 유적이 대표적이다. 패총이란 조개껍데기가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쓰레기 더미로,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원시 농경(原始農耕)은 신석기 후기에야 더해졌다. 한반도에서 농경은 문명의 출발점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정착 문화 위에 덧붙여진 기술이었다.

1만 년 전 인류가 땅을 갈기 시작한 이유
신석기 혁명은 단순히 농사를 짓기 시작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처음으로 내일을 계획한 사건이었다.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수확을 기다린다는 뜻이고, 수확을 기다린다는 것은 내일이 있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서양은 농경으로, 동양은 토기로, 한반도는 바다와 강으로 그 내일을 열었다. 길은 달랐지만 방향은 하나였다. 살아남는 것. 그리고 더 잘 살아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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