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상습범 승려 법정 구속, 불교의 금주 역사는?
승려가 또 음주운전을 했다
2025년 7월 새벽, 전남 나주시의 한 도로에서 승려 A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172%로 차량을 몰다 적발됐다. 면허취소 기준을 크게 웃도는 수치였다. 주지스님의 입적 이후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이었다.법원은 징역 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A씨에게는 2004년과 2008년 음주운전 벌금형, 2020년 징역형 집행유예,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무면허운전으로 벌금·집행유예·실형까지 받은 전력이 있었다. 수십 년에 걸쳐 같은 범행을 반복했고, 그때마다 종교인이라는 지위는 특별한 방패가 되지 못했다. 이 사건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순한 상습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승려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 자체가 엄중한 비판을 받았다. 계율을 지켜야 할 종교인이 음주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반복됐다는 것. 그런데 승려와 술의 관계가 항상 금기였던 것은 아니다.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고려의 승려는 술을 빚는 일도 본업중 하나
고려는 불교 국가였다. 그리고 그 불교 국가에서 승려는 술을 마셨을 뿐 아니라, 국가의 명령으로 술을 빚었다.현종 20년인 1027년, 고려 왕실은 개경 인근에 장의사라는 사찰을 지정해 왕실과 국가 행사에 쓸 술을 전담 생산하게 했다. 쌀과 누룩으로 청주와 탁주를 빚어 법회와 연등회, 팔관회에 공급하는 것이 이 사찰의 공식 역할이었다. 승려가 직접 술을 담그고 공급하는 것이 국가 제도였다. 팔관회는 더 노골적이었다. 음력 11월 개경에서 열리는 이 국가 행사는 이름만 보면 팔관재계, 즉 살생과 음주를 금지하는 계율을 지키는 의식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왕과 신하, 승려와 백성이 함께 밤새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자리였다. 《고려사》는 태조 19년 팔관회를 두고 "술을 베풀어 군신이 함께 즐겼다"고 기록했다. 계율은 명분이었고, 현장은 축제였다.이규보는 "술 없이는 시를 쓸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사찰에서 마신 술의 향기를 시로 남겼고, 누구도 그것을 계율 위반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고려에서 승려의 음주는 공양과 교화의 맥락에서 관용됐고, 때로는 풍류로 여겨졌다.

승려 음주 금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고려 후기가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1056년에는 승려가 술주정을 부리며 상인과 결탁한다는 금령이 내려졌고, 1131년에는 승려가 술을 팔아 난동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건국의 이론적 기반을 닦은 정도전은 "술로 나라가 망한다"며 고려를 비판했다. 억불숭유의 조선이 들어서면서 승려의 음주는 비로소 명확한 금기가 됐다.금기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승려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은 조선이 불교를 억압하며 세운 규범의 연장선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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