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군부인', 알고 보면 재밌는 역사적 배경지식
드라마 제대로 알고 보면 재미가 두 배로 재밌어진다.
MBC 새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첫 방송 시청률 7.8퍼센트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2회에서는 9.5퍼센트로 올라서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아이유와 변우석의 조합이 화제지만, 정작 드라마 제목에 담긴 '대군(大君)'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 왕실에서 이 한 글자의 차이가 사람의 운명 전체를 갈랐다.

왕의 아들이라고 다 같은 왕자가 아니었다
조선(朝鮮)의 왕실 호칭 체계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당대의 모든 차별과 권력이 압축되어 있었다. 핵심은 딱 하나다. 어머니가 누구인가.왕에게는 두 종류의 여인이 있었다. 정실(正室)인 왕비(王妃)와, 후궁(後宮)이라 불리는 첩(妾)들이었다. 같은 왕의 피를 나눠 받아도,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호칭이 달라졌다. 이것이 조선을 관통한 적서(嫡庶) 구분 제도다. 적(嫡)은 정실 소생, 서(庶)는 첩 소생. 이 한 글자의 차이가 평생을 따라다녔다.
대군(大君) — 가장 높은 왕자의 이름
왕비가 낳은 아들에게만 붙는 호칭이 대군(大君)이다. 한자를 풀면 '크고 높은 군주'라는 뜻. 왕위 계승 서열에서도 당연히 최상위였다. 조선의 가장 유명한 대군들을 떠올려 보면 이 호칭의 무게가 느껴진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아들이었던 수양대군(首陽大君)은 훗날 조카 단종(端宗)을 몰아내고 세조(世祖)가 됐다. 같은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安平大君)은 글씨와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선조(宣祖)의 아들 중 왕비 소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은 광해군(光海君)의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 대군이라는 호칭은 권력의 정점에 가장 가까운 자리였고, 동시에 권력 다툼의 한가운데 서야 하는 자리였다.
적서(嫡庶) 구분
적(嫡)은 정실 부인 소생, 서(庶)는 첩 소생을 가리킨다. 조선은 유교(儒敎) 예법에 따라 이 구분을 법제화했다. 적자(嫡子)는 과거(科擧) 응시, 관직 진출, 재산 상속에서 서자(庶子)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왕비 소생의 왕자가 없을 때만 후궁 소생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고, 이 경우 해당 왕자는 정치적 정통성 시비에 평생 시달렸다. 실제로 광해군은 후궁 소생이라는 이유로 반정(反正)의 명분을 제공했다.
군(君) — 같은 왕의 피, 다른 운명
후궁이 낳은 아들은 군(君)이라 불렸다. 한 글자 차이지만 대군과의 격차는 컸다. 왕위 계승 서열에서 뒤로 밀렸고, 받는 예우도 달랐다. 조선 역사에서 군(君)으로 불린 인물 중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사도세자(思悼世子)다. 그는 세자 책봉을 받기 전 어린 시절 왕자였고, 영조(英祖)의 손에 뒤주에 갇혀 죽었다. 연산군(燕山君)도 군(君)으로 강등된 뒤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다. 군이라는 호칭에는 왕실이라는 화려함과 동시에 권력 중심에서 밀려난 자들의 그늘이 함께 담겨 있었다.
조선의 왕위 계승은 종법(宗法) 원칙
우선순위는 이렇다. 첫째, 왕비 소생 적장자(嫡長子). 둘째, 왕비 소생 차남 이하. 셋째, 후궁 소생 장남. 넷째, 후궁 소생 차남 이하. 즉 대군이 존재하면 군은 왕위에 오를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후궁 소생이 왕이 된 사례는 성종(成宗), 중종(中宗), 선조(宣祖), 인조(仁祖), 숙종(肅宗), 영조(英祖) 등 여럿이 있지만, 이들 모두 정통성 문제로 크고 작은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다.
공주(公主)와 옹주(翁主) — 딸에게도 어머니의 신분이 따라왔다
왕의 딸도 마찬가지였다. 왕비 소생의 딸은 공주(公主), 후궁 소생의 딸은 옹주(翁主)라 불렸다. 공주와 옹주의 차이는 혼인 상대방의 신분에서도 드러났다. 공주에게 장가드는 사위는 부마(駙馬)라 불리며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 옹주의 사위도 부마라 불렸지만, 받는 품계(品階)와 대우가 달랐다. 역사 속 공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세종의 딸 정의공주(貞懿公主)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 난제를 정의공주에게 물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왕비 소생 공주는 왕실 내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가졌다. 반면 옹주는 아무리 왕의 사랑을 받아도 공주와 같은 공식적 지위를 얻을 수 없었다.
부마(駙馬)
왕의 사위를 가리키는 호칭. 공주의 남편은 위(尉)라는 품계를 받았고, 조선 초기에는 정1품에 해당하는 의빈(儀賓)의 지위를 누렸다. 단, 부마가 되면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 왕의 외척(外戚)이 권력을 쥐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부마는 평생 호화로운 생활을 보장받았지만, 정치적 야망을 펼칠 수는 없는 황금 새장 속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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