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랑 세상 식견/청랑 배경 지식 쌓기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의 역사: 호르무즈 왕국부터 혁명수비대까지

JWS 2026. 4. 11. 19:00

군사력에서 밀린 이란 호르무즈 봉쇄로 미국에게 한 방 먹이다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을 봉쇄했다. 국제 유가(油價)가 출렁였고, 세계 경제는 물가 상승 압박과 성장 둔화 경고음을 동시에 울렸다. 그런데 이 사태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호르무즈라는 이름이 얼마나 오래된 이름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좁은 해로 '호르무즈'


세계의 목구멍, 호르무즈

지도를 펼쳐 페르시아만(Persian Gulf)을 찾아보라. 이란 남부 해안과 오만(Oman)의 무산담(Musandam) 반도 사이, 가장 좁은 구간의 폭이 불과 33킬로미터에 불과한 수로(水路)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다.이 좁은 목구멍으로 오늘날 전 세계 해상 원유(原油) 운송량의 약 20퍼센트가 통과한다. 하루 평균 1700만 배럴.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이란·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의 원유가 모두 이 통로를 지나 세계로 퍼져나간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퍼센트 이상도 이 해협을 통과한다. 호르무즈가 막히자, 전쟁을 하지 않고도 한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페르시아만과 오만만(Gulf of Oman)을 잇는 해협. 너비 33~96킬로미터. 실제 선박이 통항(通航)할 수 있는 항로는 각 방향 3킬로미터씩, 폭 6킬로미터에 불과하다. 페르시아만 연안 산유국(産油國)들이 원유를 수출하려면 사실상 이 해협 외에 대안이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상용 송유관(아브카이크~얀부 노선)을 보유하고 있으나, 처리 용량이 전체 수출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동 지역의 핵심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사진: 머니투데이)


1000년 전에도 이 자리는 세계의 심장이었다

호르무즈가 전략적 요충지(要衝地)로 주목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1세기, 이 해협의 입구에 자리한 섬과 항구를 중심으로 하나의 왕국이 탄생했다. 호르무즈 왕국(Kingdom of Hormuz). 영토라고 해봤자 작은 섬과 해안 몇 곳이 전부였던 소국(小國)이었다. 그러나 이 왕국의 힘은 땅의 넓이에서 나오지 않았다. 위치(位置)에서 나왔다.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印度洋)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이 통로를 지나야 했다. 호르무즈를 장악한 자는 해상 교통과 관세(關稅), 물류(物流)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13세기에 이곳을 방문하고 남긴 기록이 있다. "세계의 상인(商人)들이 모여드는 곳." 당시 인도의 향신료(香辛料), 중국의 도자기(陶瓷器), 아라비아의 진주(眞珠), 동아프리카의 금(金)이 모두 이 항구를 거쳐 이동했다. 15세기 명(明)나라의 정화(鄭和) 대항해 때 편찬된 『성사승람(星槎勝覽)』에도 호르무즈는 "부유하고 평화로운 상업 도시"로 기록되어 있다. 동서양(東西洋)의 기록이 동시에 이 작은 섬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호르무즈의 진짜 가치였다.

호르무즈 왕국(Kingdom of Hormuz)
11세기~17세기 초까지 존속한 해상 무역 국가. 오늘날의 이란 남동부 해안과 오만 사이 해협 입구에 위치했다. 전성기에는 바레인(Bahrain)까지 영향력을 뻗쳤고, 오만 해안의 칼하트(Kalhat)를 제2 거점으로 삼았다. 이 왕국의 부(富)는 영토 생산이 아니라 환적(換積)·통관(通關)·환전(換錢)·관세 징수(關稅徵收)라는 중개 기능에서 나왔다. 인도의 향신료, 중국의 도자기, 아라비아의 진주, 동아프리카의 금이 모두 이 항구를 거쳤다. 마르코 폴로는 이곳을 "세계의 상인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기록했고, 명나라 정화(鄭和)의 항해 기록인 『성사승람(星槎勝覽)』도 호르무즈를 "부유하고 평화로운 상업 도시"로 묘사했다.

페르시아만 남부와 해협을 통제하며 해상 무역으로 번영한 '호르무즈 왕국' (지도: 빨간 표시)


강대국은 언제나 이 목구멍을 노렸다

작은 왕국의 숙명(宿命)은 강대국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 호르무즈 왕국은 처음 케르만 셀주크(Kerman Seljuk) 술탄국의 종속국(從屬國)으로 출발했다. 이후 13세기 몽골(蒙古)이 서아시아를 휩쓸면서 일 칸국(Il-Khanate)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몽골은 내륙 제국(內陸帝國)이었지만, 페르시아만의 관세 수입과 항로 통제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결정적 전환점은 1498년이었다. 포르투갈(Portugal)의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 항로를 개척했다. 유럽 해양 세력이 인도양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것이다.

포르투갈은 인도양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하기 위해 1507년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가 이끄는 함대로 호르무즈를 정복했다. 섬 위에 요새(要塞)를 세우고 페르시아만 전체를 통제하는 전진 기지(前進基地)로 삼았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지배도 영원하지 않았다. 1622년, 사파비(Safavid) 왕조의 샤 압바스(Shah Abbas) 1세는 잉글랜드 동인도회사(English East India Company)와 손을 잡고 포르투갈을 몰아냈다. 호르무즈 왕국은 이때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셀주크, 몽골, 포르투갈, 사파비. 600년 동안 네 개의 강대국이 차례로 이 해협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이유는 하나였다. 누가 이 목구멍을 쥐느냐가 곧 누가 세계 무역의 이익을 쥐느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제해권(制海權, Command of the Sea)

특정 해역(海域)을 군사적·상업적으로 지배하는 능력. 제해권을 가진 세력은 적의 해상 보급을 차단하고, 자국의 무역로를 보호하며, 관세와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다. 호르무즈의 경우, 제해권은 곧 페르시아만 전체의 경제 통제권을 의미했다. 포르투갈이 1507년 호르무즈를 점령한 것도, 1622년 사파비가 탈환한 것도 모두 이 제해권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오늘날 미국이 중동에 해군력을 유지하는 이유도 같다. 제5함대(U.S. Fifth Fleet)의 모항(母港)이 바레인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무역 통제를 위해 지어진 포르투갈의 '호르무즈 요새'


봉쇄(封鎖)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자. 호르무즈 봉쇄는 단순히 배가 못 지나가는 문제가 아니다. 하루 1700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끊기면, 국제 유가는 수일 안에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일본·중국 등 원유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는다. 전 세계 LNG(액화천연가스) 수송량의 상당 부분도 이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에, 유럽의 에너지 가격도 연쇄적으로 폭등한다. 경제 충격은 몇 주 안에 전 세계 물가(物價)와 공급망(供給網) 전체로 번진다. 이란도 이 사실을 안다. 이란 혁명수비대(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IRGC)는 이미 여러 차례 호르무즈 봉쇄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19년에는 실제로 영국 유조선을 나포(拿捕)하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호르무즈는 이란에게 마지막 협상 카드이자, 세계를 인질로 잡는 방아쇠였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Islamic Revolution) 직후 창설된 이란의 정예 군사 조직. 일반 정규군(아르테시, Artesh)과는 별도로 운영되며, 최고지도자(Supreme Leader) 직속으로 통제된다. 육·해·공군은 물론 탄도미사일 전력과 사이버 부대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레바논의 헤즈볼라(Hezbollah), 예멘의 후티(Houthi) 등 역내 무장 세력 지원도 담당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권한은 사실상 IRGC 해군이 쥐고 있으며, 기뢰(機雷) 부설과 미사일 공격을 통한 해협 차단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2019년 IRGC를 외국 테러 조직(FTO)으로 공식 지정했다.

1979년 창성될 이란의 정예 군사 조직인 '혁명 수비대'


좁은 수로가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

11세기 호르무즈 왕국의 술탄이 알고 있던 것을, 21세기 이란도 알고 있다. 좁은 목구멍 하나가 세계의 숨통을 쥔다는 것. 호르무즈 왕국은 영토가 아니라 위치의 힘으로 600년을 버텼다. 셀주크도, 몽골도, 포르투갈도, 사파비도 결국 이 섬을 차지하려 했지만, 그들이 원한 것은 섬이 아니었다. 그 섬이 가진 통제권(統制權)이었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도 본질은 같다. 누가 이 목구멍을 열고 닫을 권리를 갖느냐. 그 권리를 둘러싼 싸움이 1000년째 이어지고 있다.

 

청랑이 추천하는 다른 글을 읽고 싶다면 클릭하세요
 

트럼프 이란 '신석기' 발언, 토기와 농경이 엇갈린 동서양 신석기 문명사

협박인가, 선전포고인가. 둘 다다.2025년, 트럼프는 이란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협상하지 않으면 신석기 시대로 만들어버리겠다." 폭탄 발언에 세계가 술렁였다. 그런데 이 말을 제대로 이해

jwsme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