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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욕망의 5,000년사: 가장 오래된 직업의 정체

JWS 2026. 4. 8. 20:26

당신도 이미 알고 있다. 말하기 싫을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입 밖에 꺼내기는 꺼림칙하지만,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그 답을.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그 단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수천 년의 문명이 응축된, 훨씬 더 불편하고 훨씬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그 안에 숨어 있다.


씨앗을 심던 날, 욕망도 함께 심어졌다

약 1만 년 전, 인류는 떠돌기를 멈췄다. 씨앗을 땅에 심고, 가축을 울타리에 가두고, 강가에 집을 지었다. 신석기 혁명(新石器革命)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단순한 농업의 시작이 아니었다. 정착(定着)이 시작되자 잉여 생산물(剩餘生産物)이 생겼다. 잉여가 생기자 역할이 나뉘었다. 역할이 나뉘자 분업(分業)이 시작됐고, 분업은 거래(去來)를 낳았다.농부, 도공(陶工), 목수(木手), 무두장이. 이것이 인류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전문직(專門職)'의 목록이다. 그런데 이 깔끔한 목록에는 빠져 있는 것이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문명의 기록을 뒤져도 반드시 등장하는 그것. 기록이 그것을 증명한다.


4000년 전 점토판이 차마 숨기지 못한 이름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Sumer)의 점토판(粘土板)에 설형문자(楔形文字)로 새겨진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는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서사(敍事) 중 하나다. 여기에는 신(神)과 영웅, 홍수(洪水)와 영생(永生)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아주 조용히, 두 가지 직업이 얼굴을 내민다.

현존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서사시이자 문학 작품 '길가메시 서사시'


사냥꾼과 '거리의 여인(샴하트, Shamhat)'.

사냥꾼은 문명(文明)과 야생(野生)의 경계에 선 존재였다. 그는 성벽 바깥으로 나가 짐승을 잡아 도시 안으로 돌아왔다. 자연을 길들여 사회에 공급하는 역할. 그런데 샴하트의 역할은 더 상징적(象徵的)이었다. 서사시 속에서 그녀는 짐승처럼 살던 엔키두(Enkidu)를 인간으로 만든다. 그녀와 엿새 밤을 보낸 후, 엔키두는 야성(野性)을 잃고 동물들로부터 외면당하지만, 대신 언어와 이성(理性)과 문명을 얻는다. 야성을 문명화(文明化)하는 존재. 인류 최초의 기록이 그녀에게 붙여준 역할이 그것이었다. 그녀는 단순한 성적 대상이 아니라, 야만(野蠻)과 문명의 경계를 가르는 문지기였다.


국가는 욕망을 금지하지 않았다. 가격표를 붙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기원전 3000년경의 유물에서 이미 성매매(性賣買)의 흔적이 발견된다. 신전(神殿) 주변에는 신성 매춘부(神聖賣春婦, sacred prostitute)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들은 단순한 성 노동자가 아니라, 풍요(豊饒)의 여신 이슈타르(Ishtar)를 섬기는 종교적 역할을 겸했다. 욕망조차 신의 이름으로 제도화(制度化)한 것이다.그리스로 넘어가면 더 노골적이다. 아테네(Athenai)의 입법자(立法者) 솔론(Solon, 기원전 638~558년경)은 공창 제도(公娼制度)를 아예 법으로 만들었다.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성매매. 이것은 단순한 방임(放任)이 아니었다. 도시국가(都市國家, polis)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치 수단이었다. 당시 아테네에는 포르나이(pornai, 하급 성 노동자), 헤타이라이(hetairai, 교양을 갖춘 고급 동반자) 등 계층화된 성매매 구조가 존재했다. 헤타이라이는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나 정치가 페리클레스(Pericles)와도 교류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단순한 거래 이상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다. 한반도로 건너오면, 신라(新羅) 시대의 기생(妓生)이 등장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제작된 테라코타


기생은 본래 악(樂)·가(歌)·무(舞)를 수행하는 예인(藝人)이었으나,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을 거치면서 관기(官妓) 제도로 정착했다. 관기란 관청(官廳)에 소속되어 국가 행사와 연회(宴會)에 동원되는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국가의 재산이었고, 국가의 도구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일본은 공창 제도를 이 땅에 이식(移植)했다. 성매매는 이제 식민 지배(植民支配)의 도구가 되었다. 욕망을 제도화함으로써 사람을 길들이는 방식. 권력(權力)은 언제나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양반들이 기생들의 춤을 감상하며 풍류를 즐기는 장면


법은 바뀌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 바뀌었을까

해방(解放) 후 미군(美軍)이 들어왔다. 기지촌(基地村)이 생겨났다. 주한미군(駐韓美軍) 기지 주변에 형성된 이 구역들은 1950년대부터 국가가 묵인(黙認)한 성매매 특구(特區)나 다름없었다. 1960년대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특정 구역을 지정해 성매매를 암묵적(暗默的)으로 허용했다. 외화(外貨)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1961년 성매매 방지법(性賣買防止法)이 제정됐다. 그러나 처벌의 칼날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했다. 매도(賣盜), 즉 파는 쪽인 여성. 매수(買受), 즉 사는 쪽인 남성은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있었다. 구조(構造)는 건드리지 않고, 가장 약한 고리만 끊어내는 방식. 법이 있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이유다.

2004년, 마침내 성매수자(性買受者)를 처벌하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그러나 서울 강남(江南)과 동대문(東大門), 여고에서 300m, 초등학교에서 180m 거리에서 20년 넘게 운영된 업소들이 2026년에도 단속되고 있다. 상호(商號)를 수시로 바꾸고, 바지사장을 내세우고, 해외 서버에 전용 웹사이트까지 만들어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 법은 바뀌었지만, 매춘(賣春)은 여전히 일상(日常)을 파고들며 살아 숨쉰다.

동대문 인근의 유흥업소 거리


500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것들의 정체

길가메시 서사시의 점토판에 새겨진 직업이 오늘의 뉴스에도 등장한다. 이것을 단순히 '오래된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정리하면 너무 싱겁다.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인류는 문명을 만들면서 욕망(慾望)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금지(禁止)했는가, 아니면 제도화(制度化)했는가. 그리고 그 제도 안에서 누가 보호(保護)받고, 누가 소비(消費)되었는가.가장 오래된 직업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이면(裏面)이다. 그리고 그 이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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