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의 목적과 함정, 선택권 확대는 왜 입시 게임이 되었나

고교학점제 목적
고교학점제의 가장 핵심적인 목적은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여 개인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다. 기존의 문·이과 구분과 정해진 시간표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직접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교육의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학생과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이 같은 교육과정을 밟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이 제도의 취지다. 이 제도는 또한 진로 탐색과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기르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과목을 선택하고 학습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흥미와 강점을 발견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주어진 지식을 암기하는 수동적 학습자가 아니라, 자신의 배움을 능동적으로 설계하는 주체로 성장하게 한다는 교육철학이 담겨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 평가 방식의 혁신도 추구한다. 절대평가와 성취평가제를 확대하여 과도한 상대 서열 경쟁에서 벗어나고,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성취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다. 또한 최소 학업 성취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보충 이수 기회를 제공하여, 모든 학생이 기본적인 학업 역량을 갖추고 졸업할 수 있도록 책임교육을 실현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 제도는 학교 교육과정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촉진한다. 학교들이 지역 자원과 학교 여건에 맞는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이나 온라인 수업을 통해 소인수 과목도 개설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교육의 다양성과 접근성을 높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함정
고교학점제는 실행 과정에서 여러 구조적 함정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교 간, 지역 간 교육 격차의 심화다. 서울 강남의 대형 고등학교는 수십 개의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할 수 있지만, 농어촌 소규모 학교는 교사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기본 과목조차 개설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선택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 실제로는 학교 인프라에 따라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더욱 고착화되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교사 수급과 업무 부담 문제도 심각한 함정이다.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하려면 그만큼 많은 전공 교사가 필요한데, 현재의 교원 정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소인수 과목의 경우 한 명의 교사가 여러 학교를 순회하거나 온라인 수업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는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개별 학생의 시간표 관리, 학점 이수 상황 점검, 보충 이수 프로그램 운영 등 행정 업무가 폭증하면서 교사들은 정작 수업과 학생 지도에 집중할 시간을 잃게 된다.
더욱 치명적인 함정은 이 제도가 대학 입시와 연동되는 순간 본래의 취지가 완전히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면서 1등급을 받은 학생들조차도 입시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은 진정한 흥미나 적성이 아니라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과목, 좋은 등급을 받기 쉬운 과목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어려운 과목은 기피되고, 입시에 유리하다고 알려진 특정 과목에만 수강생이 몰리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결국 '자기주도적 진로 설계'는 '입시 전략적 과목 쇼핑'으로 변질되고, 학점제는 또 하나의 입시 게임으로 전락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과 불안도 큰 문제다.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할지, 몇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지, 각 과목이 대학 입시에서 어떻게 평가될지에 대한 정보 부족과 불확실성은 학생들을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 속으로 몰아넣으며, 사교육에 기대게 만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교육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이나 농어촌 학생들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선택의 자유는 곧 선택의 책임을 의미하며, 그 책임이 온전히 학생 개인에게 전가될 때 불평등은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평가와 졸업 기준의 함정도 존재한다. 절대평가 확대는 바람직해 보이지만, 대학 입시가 여전히 상대적 서열을 요구하는 한 학교 간 평가 기준의 차이가 새로운 불공정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미이수 학생에 대한 보충 이수 기회 제공은 좋은 취지이지만, 실제로는 학교가 졸업률을 높이기 위해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하거나 형식적인 보충 과정을 운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고교학점제는 입시 중심 교육 체제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그 이상이 좌초될 위험에 처해 있다. 대학 입시 제도의 근본적 개혁 없이 고등학교 교육과정만 바꾸는 것은, 마치 출구가 막힌 방에서 입구만 넓히는 것과 같다. 학생들은 여전히 같은 좁은 출구를 향해 경쟁해야 하고, 다만 그 경쟁의 방식이 조금 더 복잡해지고 불투명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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