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랑 세상 식견/청랑 배경 지식 쌓기

딸을 지켜려 했던 엄마, 대구 캐리어 시신으로 보는 가정 폭력의 역사

JWS 2026. 4. 6. 20:47

가정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달 31일, 대구 신천(新川) 변에서 행인이 돌에 걸린 여행 가방을 발견했다. 가방 안에는 시신이 있었다. 55세 여성 A씨. 그녀가 그 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딸을 두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800년 전에도 이 일은 있었다

기원전 1754년, 바빌로니아(Babylonia)의 함무라비 왕(王)은 282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법전(法典)을 돌기둥에 새겼다.《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 인류 최초의 성문법(成文法) 중 하나다. 이 법전에는 부부 관계와 가정 질서를 규율하는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배우자 간의 폭력과 징벌(懲罰)이 처음으로 법의 언어로 기록된 순간이었다. 고대 로마(Roma)로 넘어가면 더 노골적이었다. 로마법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가부장권(家父長權, patria potestas)이었다. 가부장은 자녀, 노예, 그리고 아내에 대한 절대적 통제권을 가졌다. 아내를 때리는 것은 범죄(犯罪)가 아니었다. '합리적 징벌(moderate correction)'의 범위 안에 있는 한, 국가는 개입하지 않았다. 가정 내부의 일은 가정 내부에서 해결하라는 것. 이 원칙은 수천 년 동안 법의 근간이 되었다.동아시아(東亞細亞)도 다르지 않았다. 한(漢)나라·진(晉)나라(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법령에는 "포악한 아내는 매로 다스릴 수 있다"는 조항이 등장한다. 조선(朝鮮) 시대 지방 문집과 사료(史料)에는 "매를 때려서 죽인 아내", "상습 폭행이 문제된 사위" 같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법관의 판례(判例) 속에 이미 가정폭력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국가가 '가정 내부의 일'이라고 부르는 동안 벌어진 일들

가정폭력(家庭暴力)이라는 개념이 법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놀라울 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서 남편의 아내 폭행에 형사 처벌(刑事處罰)을 허용하는 법이 처음 생긴 것은 1870년대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아내 폭행은 법적으로 사실상 남편의 권리(權利)였다. 한국은 더 늦었다. 1990년대 여성 운동이 가정폭력을 인권(人權) 문제로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1997년에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가정폭력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인 법률 언어가 된 것이 불과 28년 전이다. 그 이후로도 집 안에서는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가정폭력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가정폭력을 '심하게 싸우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법과 학계가 정의하는 가정폭력의 본질은 다르다. 그것은 싸움이 아니라 지배(支配)다. 한국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特例法)》 제2조는 가정폭력을 "가정구성원 간에 신체적(身體的)·정신적(精神的) 또는 재산상(財産上)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그 유형은 넷으로 나뉜다. 구타와 위협 같은 신체적 폭력(身體的暴力). 모욕과 고립 유도 같은 정신·감정적 폭력(精神的暴力). 합의 없는 성적 행위를 강제하는 성적 폭력(性的暴力). 돈과 외출을 통제하는 경제적·사회적 폭력(經濟的暴力). 그리고 이 모든 폭력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반복성(反復性). 가해자는 한 번의 충동으로 폭발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두려움을 심어, 저항할 의지 자체를 소멸시킨다. 피해자가 "신고하지 못했다"고 말할 때,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다. 수개월, 수년에 걸쳐 설계된 통제(統制)의 결과다.

 

청랑이 추천하는 다른 글을 읽고 싶다면 클릭하세요
 

맥도날드에서 피어난 인류애, 고대 그리스가 노인 방치를 처벌한 까닭은?

혼자 식사하는 노인 곁에 다가선 소년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한 맥도날드에서 3살 소년이 혼자 식사하던 낯선 노인 곁에 다가가 함께 아침을 먹은 사연이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보도

jwsme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