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생충’ 제작사 위기에 직면하다
청랑 배경지식 · 서양 근현대사에서 읽는 오늘의 콘텐츠 산업
걸작은 한 번의 성공으로 남지만 기업은 성공을 반복할 구조가 있어야 살아남는다
영화 ‘기생충’ 제작사의 위기에서 만나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미디어 전환·기업가치의 역사
영화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다. 2019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을 포함한 주요 부문을 수상했다. 한 작품이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끌어올린 사건이었다.
그런데 세계적인 걸작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그 제작회사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낸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다.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는 장기간 영업적자를 이어 갔고, 2026년 8월에는 코스닥시장에서 주가와 시가총액 요건 미달로 관리종목에 지정됐다. 9월 11일 종가는 700원, 시가총액은 약 130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상황은 한 회사의 경영 문제를 넘어 영화라는 상품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 준다. 자동차 회사는 잘 팔리는 모델의 생산공정을 개선해 비슷한 제품을 반복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영화회사는 흥행한 이야기를 그대로 복제할 수 없다. 배우와 감독, 장르와 개봉 시기, 경쟁작과 관객의 분위기가 바뀌면 결과도 달라진다. 콘텐츠의 성공은 반복 생산이 어려운데 회사의 인건비와 투자비, 조직 운영비는 계속 발생한다.
여기에 관객이 영화를 보는 방식도 바뀌었다. 영화관은 더 이상 영상 콘텐츠를 만나는 거의 유일한 장소가 아니다. 텔레비전과 비디오, 케이블을 거쳐 오늘날에는 OTT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크게 낮췄다. 제작사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능력뿐 아니라 어떤 통로를 통해 관객에게 도달하고, 그 과정에서 수익을 얼마나 확보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보다 크게 낮다는 사실도 또 다른 질문을 만든다. 회사의 PBR이 0.2배 안팎이라면 겉으로는 자산에 비해 지나치게 싸게 거래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부에 적힌 자산가치와 실제 청산가치, 앞으로 사업을 계속해 벌어들일 가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영화 제작사의 위기를 이해하려면 흥행의 불확실성, 유통 통로의 변화,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현대 이슈 | 관련 역사·개념 | 깊이 이해할 관계 |
|---|---|---|
| 한 편의 대흥행 이후에도 이어진 적자 | 1930~194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 포트폴리오 · 매몰비용 | 작품의 성공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왜 다른가 |
| 극장 관객 감소와 OTT 확산 |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 · 1950년대 텔레비전 확산 · 대체재와 차별화 | 관객이 이동하면 산업의 힘과 수익은 어디로 이동하는가 |
| 낮은 시가총액과 PBR | 대공황 이후 증권분석 · 장부가치 · 청산가치 · 계속기업가치 | 자산이 많아 보여도 시장은 왜 기업을 낮게 평가하는가 |
1. 영화의 성공은 작품 단위로 오지만 회사의 비용은 매년 다시 발생한다
‘기생충’처럼 세계적인 작품을 만든 회사라면 이후에도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 갈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과거의 흥행을 그대로 재생산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이미 성공한 작품의 명성과 경험은 다음 제작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다음 영화의 관객 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이 문제는 할리우드가 영화산업을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시키던 시기에도 핵심적인 고민이었다. 1930~1940년대의 주요 스튜디오는 영화를 한 편씩 독립적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배우·감독·작가·기술자와 시설을 조직 안에 묶어 여러 작품을 연속적으로 생산했다. 창작의 불확실성을 기업 조직으로 관리하려는 시도였다.
한 편의 세계적 흥행작이 있어도 제작사는 왜 계속 불안할까?
할리우드는 영화를 ‘한 편의 모험’에서 ‘계속 돌아가는 생산체계’로 바꾸려 했다
1930년대 고전기 할리우드에서는 파라마운트, MGM, 워너브라더스, 20세기폭스, RKO가 이른바 빅 파이브를 형성했다. 이 회사들은 제작과 배급에 더해 극장망까지 보유하거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배우와 감독·작가·촬영 인력을 장기계약으로 확보해 많은 영화를 연속적으로 만들었다.
스튜디오 내부에는 시나리오와 미술, 의상, 촬영, 편집 등 기능별 조직이 있었고 여러 제작팀이 동시에 움직였다. 이 체계의 장점은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회사를 처음부터 다시 구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었다. 사람이 떠날 때마다 새로운 팀을 찾는 비용을 줄이고, 세트와 장비를 반복해서 활용하며, 일정한 제작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구조를 흔히 스튜디오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예술을 공장처럼 만들었다’는 표현만으로 이해하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중요한 점은 예측하기 어려운 창작물을 안정적인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조직과 자본, 노동을 반복 가능한 방식으로 배치했다는 것이다.
여러 작품을 만드는 것은 한 번의 실패가 회사 전체로 번지는 위험을 낮춘다
영화의 흥행은 개봉 전에 완전히 알 수 없다. 유명 배우가 등장하고 제작비를 많이 썼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작은 작품이 예상 밖의 대흥행을 거두기도 한다. 이런 산업에서 한 해의 자금을 한 작품에만 투입하면 그 작품의 실패가 곧 회사 전체의 위기가 될 수 있다.
여러 프로젝트에 자금을 나누는 방식은 금융의 포트폴리오와 비슷한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한 작품의 실패를 다른 작품의 성공이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상의 제작사가 서로 다른 장르의 영화 네 편을 만든다면 한 작품의 관객 반응이 예상과 달라도 나머지 작품에서 손실을 보완할 기회가 남는다.
다만 작품 수를 늘리면 위험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기침체나 영화관 관객 감소처럼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충격은 여러 작품을 동시에 어렵게 만든다. 이것은 한 프로젝트에만 발생하는 위험과 여러 프로젝트가 함께 영향을 받는 공통 위험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영화 제작비는 관객의 선택을 알기 전에 먼저 들어간다
영화 제작사는 관객이 티켓을 사기 전에 배우 출연료와 촬영비, 후반작업비 등을 먼저 지출한다. 개봉 뒤 흥행에 실패한다고 해서 이미 촬영한 장면을 반납하고 제작비를 되돌려 받을 수는 없다. 이처럼 이미 지출되어 의사결정을 바꾸어도 회수하기 어려운 비용을 매몰비용이라고 한다.
콘텐츠산업에서는 이 매몰비용이 크다. 반면 영화가 완성된 뒤 디지털 파일을 관객 한 명에게 더 보여 주는 데 필요한 추가 비용은 처음 제작비에 비해 매우 작다. 즉 초기 고정비는 크고 추가 복제비용은 낮은 구조다. 이 때문에 대흥행에 성공하면 관객이 늘수록 제작비 회수가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지만,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손실도 크게 남는다.
흥행작의 명성은 자산이지만 현금흐름과 같은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을 만들면 제작사의 브랜드와 창작자 네트워크가 강화될 수 있다. 새로운 감독과 배우가 함께 일하고 싶어 할 수 있고, 투자자나 해외 파트너와 협상할 때도 성공 이력이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이런 효과는 실제 기업 경쟁력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명성은 그 자체로 직원의 임금과 다음 작품의 제작비를 지급하는 현금이 아니다. 회사가 지속되려면 성공작에서 얻은 자금과 평판을 다음 프로젝트의 수익으로 연결해야 한다. 작품의 성공은 과거에 확인된 성과이고 기업의 가치는 앞으로 그 성과를 얼마나 반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라는 차이가 있다.
고전기 할리우드의 해법을 오늘의 한국 제작사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1930년대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는 장기 고용계약과 자체 시설, 전국 배급망과 극장망을 바탕으로 움직였다. 오늘날 한국의 영화 제작은 작품별 프로젝트 조직과 외부 투자, 배급 계약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 노동시장과 금융구조, 법제도도 다르다.
따라서 현대 제작사가 옛 할리우드처럼 거대한 스튜디오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는 없다. 역사에서 가져올 수 있는 원리는 더 좁고 정확하다. 흥행의 불확실성이 큰 산업일수록 한 번의 성공보다 위험을 여러 프로젝트에 나누고 다음 제작을 이어 갈 자금과 조직을 확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핵심 연결 · 수요 불확실성 → 매몰비용 → 포트폴리오 → 지속가능성
관객 반응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데 제작비는 먼저 투입되기 때문에 영화 한 편의 실패가 큰 손실로 남을 수 있다. 여러 작품과 수익원을 갖추는 것은 성공률을 보장하는 방법이 아니라 실패가 기업 전체의 생존으로 번지는 위험을 낮추는 방법이다. 그래서 걸작을 만드는 능력과 영화회사를 오래 유지하는 능력은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역량이다.
2. OTT의 위협은 영상이 많아진 것보다 관객에게 가는 길이 바뀌었다는 데 있다
영화관과 OTT를 비교하면 가격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극장은 한 작품을 보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하고 이동비용도 든다. OTT는 구독 기간 동안 여러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변화는 단순히 “OTT가 싸다”는 문제보다 넓다. 관객이 콘텐츠를 발견하고 선택하고 소비하는 통로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산업은 과거에도 비슷한 충격을 경험했다. 1948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파라마운트 판결은 대형 스튜디오가 제작·배급·상영을 통합해 행사하던 힘에 제동을 걸었고, 바로 뒤이어 텔레비전이 가정에 빠르게 보급되면서 영화관은 관객의 시간을 두고 새로운 매체와 경쟁해야 했다.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 할리우드는 어떻게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냈을까?
영화를 만드는 힘과 관객에게 보여 주는 힘은 같은 것이 아니다
고전기 할리우드의 빅 파이브는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극장망에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를 만든 회사가 상영 통로까지 확보하면 자신의 작품을 좋은 시기에 안정적으로 걸 수 있다. 제작·배급·상영처럼 앞뒤 단계가 하나의 기업 안에 결합된 구조를 수직적 통합이라고 한다.
수직적 통합에는 효율성이 있다. 회사 내부에서 제작 일정과 개봉 일정을 조정할 수 있고, 외부 업체와 매번 협상하는 비용도 줄어든다. 그러나 유통 통로를 가진 기업이 경쟁사의 접근을 막기 시작하면 효율성은 시장지배력으로 바뀔 수 있다.
당시 논란이 된 대표적 관행이 블록 부킹이었다. 극장이 원하는 인기 영화 한 편을 받기 위해 같은 배급사의 다른 작품까지 묶어 계약해야 하는 방식이다. 흥행이 약한 작품까지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튜디오에는 위험관리 수단이었지만, 극장의 선택권과 독립 제작사의 진입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은 통합 자체보다 경쟁을 배제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48년 United States v. Paramount Pictures 판결에서 블록 부킹 등 여러 거래관행을 위법한 경쟁 제한으로 판단했다. 중요한 점은 수직적 통합 자체가 언제나 불법이라고 단순하게 선언한 것이 아니라, 그 통합이 어떤 시장지배력을 만들고 경쟁을 배제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지를 따졌다는 데 있다.
이 판결과 후속 조치로 주요 스튜디오의 극장 소유 구조는 크게 바뀌었다. 할리우드의 힘은 더 이상 제작사와 극장망을 한 몸처럼 운영하는 기존 방식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영화산업에서 콘텐츠의 힘과 유통 통로의 힘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다.
텔레비전은 관객의 ‘돈’뿐 아니라 ‘저녁시간’을 가져갔다
1950년대 미국에서 텔레비전이 빠르게 가정으로 들어오자 영화산업은 새로운 경쟁에 직면했다. 영화관과 텔레비전은 같은 제품은 아니었다. 하나는 큰 화면과 공동 관람을 제공했고 다른 하나는 집에서 편하게 영상을 볼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소비자의 하루는 제한되어 있다. 저녁 두 시간을 텔레비전에 사용하면 그 시간에는 영화관에 갈 수 없다. 경제학에서 서로 완전히 동일하지 않더라도 같은 욕구나 예산, 시간을 놓고 경쟁하는 상품을 대체재의 관계로 볼 수 있다. 텔레비전이 영화관의 대체재가 된 핵심은 화면의 크기가 아니라 여가시간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영화관은 텔레비전을 따라 하기보다 집에서 하기 어려운 경험을 강화했다
할리우드는 텔레비전보다 작은 화면을 만드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와이드스크린과 대형 스펙터클, 입체적 음향처럼 가정에서 쉽게 재현하기 어려운 경험을 강조했다. 새로운 경쟁자가 편의성을 가져갔다면 기존 산업은 자신의 차별적 경험을 강화한 것이다.
이것이 차별화의 원리다. 가격을 낮추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대신 소비자가 별도의 비용을 내고도 선택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특별관과 대형 스크린, 고성능 음향, 팬덤 중심의 이벤트 상영 역시 같은 경제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경쟁하던 텔레비전은 결국 새로운 고객이 되기도 했다
텔레비전은 영화관의 관객을 빼앗았지만 할리우드에 새로운 시장을 제공하기도 했다. 영화사는 방송용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기존 영화를 텔레비전에 판매했다. 기존 산업을 위협한 매체가 동시에 새로운 유통망이 된 것이다.
OTT도 비슷한 양면성을 가진다. 극장에는 관람시간을 빼앗는 경쟁자이지만 제작사에는 작품을 구매하고 투자하는 새로운 거래 상대가 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플랫폼은 한 작품을 여러 국가의 시청자에게 동시에 노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국내 방송망과 다른 규모의 유통 능력을 가진다.
1950년대 텔레비전과 오늘의 OTT를 같은 충격으로 보면 중요한 차이를 놓친다
1950년대 미국 텔레비전은 정해진 편성표에 따라 방송되는 매체였고 광고를 기반으로 한 무료 시청의 비중이 컸다. 오늘날 OTT는 구독형·광고형 등 여러 모델을 사용하고, 이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콘텐츠를 선택하며,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작품을 발견한다. 국경을 넘는 유통 속도도 훨씬 빠르다.
따라서 “과거에 텔레비전을 이겨냈으니 영화관은 OTT도 반드시 이겨낸다”는 식의 예측은 성립하지 않는다.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원리는 새 매체가 등장하면 소비자의 시간 배분과 유통 권력이 달라지고, 기존 산업은 자신의 차별적 가치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데 있다.
핵심 연결 · 유통 통로 → 시장지배력 → 대체재 → 차별화
콘텐츠 산업에서는 무엇을 만들었는지만큼 누가 관객에게 가는 길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텔레비전은 극장의 여가시간을 빼앗았고 영화산업은 극장만의 경험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새 매체를 유통시장으로 활용했다. OTT 역시 경쟁자이면서 구매자라는 양면성을 가지므로 극장 관객 감소와 제작사의 기회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3. 주가가 장부가치보다 낮다는 사실은 기업의 미래에 대한 시장의 의심을 함께 보여 준다
바른손이앤에이처럼 PBR이 0.2배 안팎인 기업을 보면 “회사가 가진 순자산의 20%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장부상 자기자본이 100이라고 할 때 시장은 회사 전체 지분을 약 20 정도로 평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 “회사를 청산하면 현재 주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결론 내리면 장부가치와 청산가치를 혼동하게 된다. 주식시장은 지금 회사가 가진 자산뿐 아니라 그 자산을 앞으로 어떻게 사용할지까지 가격에 반영하려 하기 때문이다.
PBR이 0.2배라면 정말 회사를 정리하는 편이 주주에게 더 유리할까?
장부가치와 시장가치를 구분하려는 생각은 대공황 이후 증권분석에서도 중요한 문제였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와 대공황은 주가와 기업의 실제 재무상태를 어떻게 구분해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크게 부각시켰다.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는 1934년 『증권분석(Security Analysis)』을 출간해 주식의 시장가격만 따라가기보다 재무제표와 수익력, 자산가치를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접근은 주식의 가격과 기업의 가치가 언제나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시장이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도 있고 비관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부가치보다 주가가 낮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평가라고 판정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어떤 자산이 실제로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 회사가 이익을 낼 능력이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PBR은 회사의 시장가격과 회계상 자기자본을 비교할 뿐 실제 매각가격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PBR은 주가순자산비율로, 일반적으로 기업의 시가총액을 회계상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PBR 1배라면 시장가치와 장부상 자기자본이 비슷하고, 0.2배라면 시장가치가 장부상 자기자본의 약 20%라는 뜻이다.
문제는 재무상태표의 자산이 모두 현금이 아니라는 데 있다. 건물과 장비, 투자자산, 콘텐츠 관련 권리처럼 실제 매각가격이 장부금액과 달라질 수 있는 자산이 포함된다. 회계상 숫자는 일정한 회계기준에 따라 측정된 값이지 오늘 당장 시장에 내놓았을 때 반드시 받을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
청산가치는 자산을 팔고 모든 의무를 정리한 뒤 실제로 남는 금액이다
청산가치는 사업을 중단하고 보유 자산을 처분한 뒤 부채와 청산비용을 지급했을 때 주주에게 남을 수 있는 가치를 뜻한다. 장부에 100억원으로 기록된 자산을 급하게 팔았을 때 70억원만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시장가치가 장부금액보다 높은 자산도 있을 수 있다.
여기에 계약해지 비용과 세금, 퇴직 관련 비용, 법률비용, 자산 처분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장부상 자기자본이 100이라고 해서 청산 뒤 주주에게 100이 그대로 남는다고 볼 수 없다. 장부가치와 청산가치는 계산의 목적과 전제가 다르다.
콘텐츠 기업은 과거의 제작원가보다 미래의 흥행 가능성과 권리 가치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영화 제작사의 가치에는 현금과 건물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의 판권, 프로젝트 투자지분, 창작자와의 관계, 후속 제작 가능성 같은 요소가 영향을 준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장부에 기록되더라도 앞으로 얼마의 현금을 만들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과거에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 앞으로도 큰 수익을 낸다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장부에는 큰 금액으로 드러나지 않는 창작자 네트워크가 미래의 성공작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콘텐츠 기업은 특히 과거에 얼마를 썼는가와 앞으로 얼마를 벌 수 있는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산업이다.
시장은 현재 자산보다 앞으로 자본이 어떻게 변할지를 먼저 걱정할 수 있다
기업이 계속 적자를 내면 손실은 자기자본을 감소시킬 수 있다. 현재 장부상 자기자본이 100이라고 해도 앞으로 적자가 반복되면 그 숫자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시장은 오늘의 재무제표뿐 아니라 미래의 손익과 추가 자금조달, 자산가치 변화까지 예상해 주가에 반영하려 한다.
그래서 낮은 PBR에는 서로 다른 가능성이 섞여 있다. 시장이 지나치게 비관적이어서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현재 장부가치가 앞으로 계속 감소할 가능성을 미리 반영했을 수도 있다. 낮은 PBR은 저평가라는 결론이 아니라 왜 시장가격과 장부가치가 벌어졌는지를 조사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계속기업가치는 ‘자산을 팔 것인가’보다 ‘이 자산으로 앞으로 무엇을 벌 것인가’를 묻는다
계속기업가치는 회사를 당장 해산하지 않고 사업을 계속하면서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가치다. 공장과 직원, 지식재산을 각각 따로 팔았을 때보다 하나의 회사로 운영할 때 더 큰 수익을 만들 수 있다면 계속기업가치가 더 높을 수 있다.
반대로 자산을 계속 사업에 투입하는데 지속적으로 가치가 줄어든다면 주주는 경영진이 그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질문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회계 숫자가 아니라 자본배분, 즉 회사가 보유한 돈과 자산을 어떤 사업에 얼마나 배치해 수익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상장폐지 위험과 기업가치의 저평가는 같은 판단이 아니다
2026년 7월부터 코스닥의 시가총액 관련 기준은 200억원으로 강화됐고, 주가 1000원 미만 요건도 도입됐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뒤에는 90거래일 동안 기준을 45거래일 연속 상회해야 해당 사유에 따른 상장폐지를 피할 수 있다. 이것은 거래소가 일정한 상장 유지 기준을 적용하는 제도적 문제다.
반면 어떤 회사의 주식이 저평가되어 있는지는 자산과 미래수익, 위험을 따져 판단하는 가치평가의 문제다. 상장폐지 위험이 있다는 사실과 기업의 경제적 가치가 0이라는 판단은 동일하지 않으며, PBR이 낮다는 사실과 상장 유지가 정당하다는 주장도 동일하지 않다. 제도적 요건과 가치 판단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핵심 연결 · 장부가치 → 청산가치 → 계속기업가치 → 시장가격
장부가치는 회계기준으로 측정된 자기자본이고, 청산가치는 실제로 사업을 끝냈을 때 남는 가치이며, 계속기업가치는 사업을 이어 가며 만들 미래 현금흐름의 가치다. 시장가격은 투자자들이 이 정보와 위험을 종합해 형성한다. 그래서 PBR이 낮다는 사실만으로 청산이 유리하다거나 시장이 틀렸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영화산업의 위기는 작품의 질보다 ‘성공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능력’을 묻고 있다
바른손이앤에이의 위기를 ‘기생충 같은 작품을 만들고도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놀라움으로만 보면 한 회사의 흥망 이야기로 끝난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역사를 함께 놓고 보면 콘텐츠 산업이 오랫동안 해결하려 했던 세 가지 문제가 보인다.
첫째, 영화는 흥행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데 비용은 관객의 선택보다 먼저 투입된다. 그래서 기업은 한 편의 대박보다 여러 작품과 자금원을 통해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성공작의 명성은 다음 기회를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이 자동으로 다음 현금흐름이 되지는 않는다.
둘째, 콘텐츠의 경쟁력은 작품 자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는 극장망을 가진 기업이 강한 힘을 가졌고, 1950년대에는 텔레비전이 관객의 여가시간을 가져갔다. 오늘날에는 OTT가 작품을 발견하고 소비하는 통로의 일부를 장악한다. 누가 관객에게 가는 길을 가지고 있는가는 누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가와 별도의 경쟁력이다.
셋째, 기업가치는 과거의 영광이나 현재 장부에 적힌 자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장은 그 자산을 앞으로 얼마나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적자가 계속될지,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 수 있는지를 가격에 반영하려 한다. 그래서 낮은 PBR은 자산이 많다는 신호일 수도 있지만 미래수익성에 대한 의심의 신호일 수도 있다.
한국 영화산업의 어려움도 OTT 하나로 환원하기 어렵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서 2025년 전체 극장 매출과 관객 수는 전년보다 감소했지만 여전히 연간 관객 1억 명 이상을 유지했다. 극장의 수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객의 선택 조건과 투자 구조, 작품의 수익회수 방식이 바뀌는 과정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걸작은 한 번의 창작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지만 기업은 다음 작품을 만들 자금과 유통망, 위험관리 구조를 매번 다시 증명해야 한다. ‘기생충’ 제작사의 위기는 예술적 성공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왜 같은 말이 아닌지, 그리고 콘텐츠 산업에서 창작과 자본·유통·시장평가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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