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직원에게 경쟁사 AI 사용도 허용하다
청랑 배경지식 · 서양 근현대 산업사에서 읽는 오늘의 AI 경쟁
강한 기업은 모든 기술을 직접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무엇을 직접 만들고 무엇을 빌릴지 판단하는 기업이다
구글의 경쟁 AI 활용에서 만나는 포드의 수직통합, IBM PC의 개방형 구조, 애플·마이크로소프트의 코피티션
자체 인공지능 모델 제미나이를 개발하는 구글이 사내 엔지니어들에게 경쟁사 앤트로픽의 Claude Opus 5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다. 구글은 제미나이를 내부 개발의 주력 모델로 유지하면서도, 특정한 개발 업무에서는 외부 모델을 사용자별 할당량에 따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자사 기술을 직접 만드는 세계적인 기업이 경쟁사의 기술까지 업무도구로 사용하는 장면이다.
겉으로 보면 이상하다. 막대한 자본과 인재를 투입해 자체 AI를 개발하는 기업이라면 직원도 자사 모델만 써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경쟁사의 도구를 허용하는 순간 자사 기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의 역사에서 기업은 언제나 “전부 직접 만들 것인가, 일부를 외부에서 가져올 것인가”라는 선택을 해 왔다.
20세기 초 포드는 철광석과 석탄, 유리와 철강, 철도와 발전소까지 한 기업 안에 넣으며 거의 모든 생산단계를 직접 통제하려 했다. 반대로 1981년 IBM은 개인용 컴퓨터를 빠르게 시장에 내놓기 위해 Intel의 프로세서와 Microsoft의 운영체제를 사용했다. 1997년에는 오랫동안 경쟁해 온 Apple과 Microsoft가 Office와 브라우저, 특허, 투자 문제에서 손을 잡았다.
세 사례는 서로 다른 시대와 산업의 이야기지만 한 가지 공통 질문을 던진다. 기업의 경쟁력은 모든 기술을 소유하는 데 있는가, 아니면 가장 유리한 기술과 파트너를 조합하는 능력에 있는가. 오늘날 AI 경쟁에서는 이 질문이 더욱 중요해졌다. 모델의 성능이 빠르게 변하고 코딩·검색·추론처럼 업무별 강점도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모델만 고집하는 비용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 기술을 사용하면 새로운 위험도 생긴다. 중요한 기술에 대한 내부 학습이 느려질 수 있고, 특정 공급자에게 의존하면 가격과 이용조건의 변화에 취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모든 기능을 내부에서 만들려 하면 개발 속도가 떨어지고 이미 더 나은 외부 기술을 활용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AI 시대의 경쟁은 단순히 “누가 최고의 모델을 가졌는가”뿐 아니라 기업의 경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라는 오래된 산업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 현대 이슈 | 관련 역사·개념 | 깊이 이해할 관계 |
|---|---|---|
| 자체 AI를 만들면서 외부 AI도 사용 | 포드 리버루지 공장 · 수직통합 · 코스의 거래비용 | 기업은 왜 어떤 기술은 직접 만들고 어떤 기술은 외부에서 사는가 |
| 경쟁사 기술을 내부 개발도구로 채택 | 1981년 IBM PC · Intel · Microsoft · 개방형 구조와 모듈화 | 외부 기술을 활용하면 속도는 빨라지지만 핵심 주도권은 어떻게 이동하는가 |
| 경쟁하면서 투자하고 협력 | 1997년 Apple·Microsoft 협력 · 보완재 · 코피티션 | 경쟁사는 왜 서로의 생태계를 살려 주는 협력을 선택하는가 |
1.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방식은 통제력을 높이지만 언제나 가장 빠른 선택은 아니다
AI 모델을 직접 보유한 기업이 왜 다른 회사의 모델을 사용할까. 이 질문은 단순히 기술 성능만 비교해서는 답하기 어렵다. 기업은 어떤 일을 조직 내부에서 처리하고 어떤 일을 시장의 다른 기업과 거래할지 끊임없이 선택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포드자동차는 이 선택에서 극단적으로 ‘직접 만들기’에 가까운 길을 걸었다. 미시간주의 리버루지 공장은 철광석과 석탄이 들어와 자동차가 되어 나가는 거대한 생산체계였고, 포드는 원료와 운송, 철강 생산까지 최대한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포드도 수많은 공급업체에 의존했고, 결국 광산과 철강 등 여러 사업을 분리했다.
기업은 기술을 직접 만들 수 있는데도 왜 외부의 기술을 사서 사용할까?
포드의 리버루지는 ‘기업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꿈에 가장 가까운 공장이었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 생산의 속도와 비용을 통제하려면 부품 조립만 잘해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원료 공급과 운송이 늦어지면 조립라인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10~1920년대 포드는 미시간 디어본의 리버루지 복합공장을 거대한 수직통합 체계로 발전시켰다.
리버루지에는 부두와 철도, 발전소, 코크스 공장과 용광로, 제철소, 유리공장과 주조시설이 들어섰다. 철광석과 석탄, 석회석이 공장으로 들어오면 철강과 엔진, 유리와 각종 부품으로 바뀌어 자동차 조립으로 이어졌다. 포드는 광산과 산림, 운송망에도 투자하며 원료에서 완성차까지의 흐름을 최대한 내부에서 통제하려 했다.
이러한 방식을 수직통합이라고 한다. 제품을 만드는 여러 단계 가운데 이전에는 서로 다른 기업이 맡던 단계를 한 기업이 소유하거나 직접 운영하는 것이다.
수직통합의 장점은 ‘통제’와 ‘조정’에 있다
공급업체에서 부품이 늦게 도착하면 생산라인 전체가 멈출 수 있다.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긴다. 기업이 핵심 단계를 직접 운영하면 생산 순서와 품질기준을 내부 명령으로 조정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외부 업체와 매번 협상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모든 단계를 직접 보유하면 고정비가 커지고 조직도 복잡해진다. 특정 기술이 빠르게 바뀔 때에는 내부 설비와 인력이 오히려 변화의 부담이 될 수 있다. 어떤 부품을 외부 전문기업이 더 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면 직접 생산의 이점도 줄어든다.
로널드 코스는 기업의 경계를 ‘거래비용’으로 설명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는 1937년 「기업의 본질」에서 시장에서 가격을 보고 필요한 것을 사면 되는데 왜 기업이라는 조직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코스의 설명에서 핵심은 거래비용이다. 시장에서 거래하려면 적절한 공급자를 찾고, 가격과 품질을 비교하고, 계약조건을 협상하며,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런 비용이 크다면 기업 내부에서 직접 생산하고 관리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반대로 조직 내부의 관리도 무료가 아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여러 부서를 조정하는 비용이 늘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의 경계는 시장거래의 비용과 내부관리의 비용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지에 따라 달라진다.
AI에서는 외부 모델을 사용하는 비용과 내부 모델을 고집하는 비용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자체 AI 모델을 보유한 기업도 모든 업무에서 언제나 자사 모델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코딩, 긴 문서 분석, 이미지 처리처럼 과업별로 모델의 강점이 다를 수 있고 성능 순위도 빠르게 바뀐다.
가상의 예를 들어 보자. 어떤 내부 모델로 개발자가 하루에 기능 하나를 완성하지만 외부 모델을 쓰면 같은 시간에 기능 두 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자. 외부 모델의 사용료가 발생하더라도 개발자의 시간과 프로젝트 지연 비용까지 고려하면 외부 모델이 더 저렴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비교해야 할 것은 모델 사용료 하나가 아니라 업무 전체를 완료하는 총비용이다.
구글이 제미나이를 주력 모델로 유지하면서 특정 용도에 Claude를 허용하는 구조도 이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외부 모델을 채택했다고 자사 모델 개발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부 의존은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거래비용을 만든다
외부 AI를 쓰면 빠른 성능 향상을 즉시 활용할 수 있지만 공급자 의존이라는 문제가 생긴다. 가격정책이 바뀌거나 사용량이 제한될 수 있고, 모델의 세부 작동방식이 변경되면 내부 업무 절차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민감한 코드와 데이터를 어떤 범위까지 외부 모델에 제공할 수 있는지도 관리해야 한다.
내부 개발자들이 특정 외부 모델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조직 안의 기술축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높아져도 장기적으로 자사 모델을 개선할 피드백과 사용경험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포드의 역사가 보여 주는 것은 ‘직접 만들기’와 ‘외부 조달’ 사이에 영구적인 정답이 없다는 점이다
리버루지는 수직통합의 상징이었지만 포드조차 모든 것을 완전히 자급하지는 못했다. 리버루지가 가장 강력했던 시기에도 수천 개의 외부 공급업체가 존재했고, 이후 포드는 철강·광산·원료 사업에서 점차 물러나며 더 많은 공급자와 분업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산업이 성숙하고 전문 공급업체의 기술이 발전하면 시장에서 사 오는 이점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공급망이 불안하거나 핵심기술이 기업의 차별성을 좌우하면 다시 내부화할 유인이 커진다. 기업의 경계는 기술과 시장조건에 따라 계속 움직인다.
핵심 연결 · 수직통합 → 거래비용 → 내부화와 외부조달 → 기업의 경계
기업은 능력이 없어서만 외부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좋은 기술을 사 오는 비용이 내부에서 같은 기능을 만드는 비용보다 낮다면 외부조달이 합리적일 수 있다. 반대로 보안·학습·공급자 의존이 중요해지면 직접 개발의 가치가 커진다. 핵심은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기능을 어디에서 조달하는 것이 전체 경쟁력을 높이는가에 있다.
2. 외부 기술을 빠르게 조합하면 시장을 앞설 수 있지만 핵심 주도권을 다른 기업에 넘길 수도 있다
외부 기술을 활용하는 전략은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부품이나 소프트웨어가 산업의 표준이 되면 그 기술을 제공한 기업이 예상보다 큰 힘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이 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981년 IBM PC다.
당시 IBM은 대형 컴퓨터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었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는 시간을 잃고 있었다. IBM은 평소처럼 핵심 부품을 모두 직접 개발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외부 부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단기간에 제품을 내놓았다. 그 결정은 PC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Microsoft와 Intel이 산업의 핵심층을 차지할 기회도 만들었다.
IBM은 외부 기술로 PC 시장을 키우고도 왜 핵심 주도권의 일부를 잃게 되었을까?
1981년 IBM은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IBM’답지 않은 방식으로 PC를 만들었다
1980년 IBM 경영진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IBM의 일반적인 제품개발 과정은 수년이 걸릴 수 있었지만 PC 프로젝트에는 약 1년 정도의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이 일정 안에 모든 부품을 새로 설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IBM의 개발팀은 기존 부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프로세서는 Intel의 8088을 선택했고 운영체제는 Microsoft가 제공했다. 프린터도 외부 업체 제품을 사용했다. 그 결과 IBM PC 5150은 1981년 8월 시장에 등장했다. 개발 속도를 높인 핵심은 이미 검증된 외부 기술을 조합하는 것이었다.
IBM의 더 중요한 선택은 부품보다 ‘연결 방식’을 열어 둔 것이었다
IBM은 PC의 기술자료를 공개하고 다른 기업이 소프트웨어와 주변기기를 만들기 쉬운 개방형 구조를 채택했다. 모니터와 프린터, 메모리카드 같은 부품을 여러 회사가 개발할 수 있었고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IBM PC에 맞는 프로그램을 빠르게 공급했다.
서로 다른 부품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연결되도록 제품을 나누는 방식을 모듈화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인터페이스가 표준화되어 있으면 특정 부분을 다른 제품으로 교체하기 쉬워진다.
AI 개발환경도 비슷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사내 개발 플랫폼이 여러 모델을 같은 인터페이스에서 호출할 수 있다면 개발자는 업무에 따라 모델을 바꿀 수 있다. 모델 자체보다 여러 모델을 연결하고 배분하는 플랫폼이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오를 수 있다.
개방형 구조는 IBM PC를 표준으로 만들었지만 복제 가능한 시장도 만들었다
IBM이 기술자료를 공개하면서 소프트웨어와 주변기기 생태계는 빠르게 커졌다. 출시 1년 만에 수백 개의 소프트웨어 패키지가 등장했고 여러 기업이 IBM PC 호환 주변장치를 만들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IBM이 만든 컴퓨터 그 자체가 아니라 IBM PC용 소프트웨어와 주변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호환성이 되기 시작했다. 표준이 기업의 독점적 제품에서 산업의 공통 플랫폼으로 이동한 것이다.
표준을 넓게 퍼뜨리면 시장 전체는 커질 수 있지만 원래 표준을 만든 기업이 모든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호환제품이 늘어나면 하드웨어 가격 경쟁이 심해지고 소비자는 다른 제조사의 PC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운영체제와 프로세서는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층으로 남았다
PC 제조사는 많아졌지만 대부분의 호환 PC는 Intel 계열 프로세서와 Microsoft 운영체제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완제품 제조업체끼리 경쟁이 심해진 반면 프로세서와 운영체제라는 중요한 층에서는 소수 기업의 영향력이 커졌다.
이 현상은 산업의 가치가 어느 층에 집중되는지를 보여 준다. 다른 구성요소가 바뀌어도 계속 사용되는 기술, 다른 기업들이 호환성을 맞춰야 하는 기술이 더 강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오늘날 AI 산업에서도 모델, 개발 에이전트, 클라우드, 반도체, 데이터, 업무 플랫폼 가운데 어느 층이 가장 쉽게 교체되고 어느 층이 다른 기업들을 묶어 두는가에 따라 장기적인 산업 주도권이 달라질 수 있다.
외부 모델을 쉽게 바꿀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진다면 의존 위험은 줄어든다
기업이 외부 기술을 사용할 때 큰 위험 가운데 하나는 전환비용이다. 특정 모델에 맞춰 코드와 업무절차를 깊게 설계하면 나중에 다른 모델로 바꿀 때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 공급자가 가격을 올리거나 성능이 뒤처져도 쉽게 떠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반대로 여러 모델을 같은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고 도구 연결방식을 표준화해 두면 모델 전환이 쉬워진다. 이 경우 특정 모델 공급자의 협상력은 줄어들고 모델을 선택·배분하는 플랫폼의 가치가 커질 수 있다.
구글이 외부 모델을 자사 개발 플랫폼 안에서 제한된 용도로 제공한다는 점은 이 관점에서 중요하다. 외부 모델 자체가 개발환경을 장악하도록 두기보다 자신의 플랫폼 안에 외부 모델을 하나의 선택지로 넣는 방식이라면 이용자는 외부 기술을 쓰면서도 기업은 사용경로와 정책을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다.
IBM의 경험은 외부 기술을 쓰지 말라는 교훈이 아니라 ‘어느 층을 지킬 것인가’를 묻는다
IBM이 Intel과 Microsoft를 사용한 결정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다. 그 결정 덕분에 짧은 시간에 시장에 진입했고 IBM PC는 사실상의 산업표준이 되었다. PC 시장 자체도 크게 확대되었다.
문제는 시장이 커진 뒤 어느 부분이 가장 큰 가치와 협상력을 갖게 될지까지 처음부터 통제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외부 기술을 사용한다는 사실보다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기술과 고객의 접점을 누가 장악하는지가 장기적으로 더 중요했다.
핵심 연결 · 모듈화 → 개방형 구조 → 생태계 확대 → 가치의 이동
외부 기술과 표준 인터페이스를 활용하면 제품을 빠르게 만들고 많은 협력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모듈화되면 가장 희소하고 교체하기 어려운 층으로 이익과 협상력이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AI 기업의 과제는 외부 모델을 쓸 것인가의 이분법보다 어떤 층을 개방하고 어떤 층에서 주도권을 유지할 것인가에 있다.
3. 경쟁기업은 서로를 약화시키는 것보다 함께 시장을 키우는 편이 유리할 때 협력한다
기업 경쟁은 스포츠 경기처럼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반드시 지는 관계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술산업에서는 같은 기업이 한 시장에서는 경쟁하면서 다른 시장에서는 고객이나 공급자, 투자자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 AI 기업들이 서로 모델 성능을 겨루면서도 클라우드와 반도체, 자본과 유통에서 복잡하게 연결되는 이유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대표적 사례가 1997년 Apple과 Microsoft의 협력이다. 두 회사는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에서 오랫동안 경쟁했지만 Apple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던 시기에 Microsoft는 Apple에 투자하고 Macintosh용 Office를 계속 공급하기로 했다. 경쟁사의 생존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Microsoft에도 그 협력이 필요한 이유가 있었다.
경쟁기업은 왜 상대를 무너뜨리지 않고 때로는 투자하고 기술까지 제공할까?
1997년 Apple과 Microsoft는 경쟁관계를 없애지 않은 채 협력협정을 맺었다
1990년대 중반 Apple은 판매 부진과 제품전략 혼란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97년 Steve Jobs가 경영의 중심으로 돌아온 뒤 회사는 제품군을 정리하고 생존전략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그해 8월 Apple과 Microsoft는 광범위한 협력을 발표했다. Microsoft는 Apple에 1억 5천만 달러를 투자했고 Macintosh용 Microsoft Office를 계속 개발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특허를 폭넓게 교차사용하는 데 합의했고 Apple은 Internet Explorer를 Mac의 기본 브라우저 가운데 하나로 제공했다.
중요한 것은 Microsoft가 Mac 운영체제와 Windows의 경쟁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 회사는 계속 경쟁했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서로가 필요했다.
경쟁사의 생존이 자사 제품의 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
컴퓨터 운영체제의 가치는 운영체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용자가 실제 업무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문서작성과 스프레드시트 같은 Office 프로그램은 Macintosh 사용자에게 중요한 보완재였다.
보완재는 함께 사용할 때 가치가 커지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뜻한다. 자동차와 연료, 게임기와 게임 소프트웨어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운영체제와 생산성 소프트웨어도 비슷하다. Mac 사용자가 충분히 존재해야 Macintosh용 Office를 개발할 시장이 남고, Office가 제공되어야 Mac을 선택하는 기업과 사용자의 불안도 줄어든다. 경쟁사의 생태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항상 자신의 이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이유다.
1990년대 Microsoft에는 경쟁자가 존재하는 시장구조 자체도 중요했다
당시 Microsoft는 Windows와 Internet Explorer를 둘러싸고 미국 정부와 치열한 독점금지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Apple과의 협력을 오직 독점규제를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Microsoft의 시장지배력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기업의 전략은 한 가지 동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Apple을 안정적인 고객으로 유지하는 이익, Mac용 Office 시장을 지키는 이익, 특허분쟁을 줄이는 이익, 경쟁구조에 대한 외부의 시선 등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다.
‘코피티션’은 경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할 영역과 경쟁할 영역을 나누는 전략이다
경쟁을 뜻하는 competition과 협력을 뜻하는 cooperation을 합친 코피티션(coopetition)은 경쟁기업끼리도 상호이익이 있는 영역에서는 협력할 수 있다는 관계를 설명한다.
기업들은 시장 전체의 크기를 키우는 단계에서는 협력하고, 그 시장에서 고객과 이익을 나누는 단계에서는 경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 기업이 공통 통신규격을 만들면 호환성이 높아져 시장이 커질 수 있다. 표준이 만들어진 뒤에는 각 기업이 그 규격을 사용한 제품의 성능과 가격으로 경쟁한다.
AI 산업도 모델기업과 클라우드기업, 반도체기업의 역할이 얽혀 있다. 한 회사가 자체 모델을 개발하면서 경쟁 모델을 클라우드에서 판매하거나 경쟁 모델 회사에 투자하면서 자신의 인프라를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
경쟁사의 기술을 내부에서 사용하는 것도 일종의 벤치마킹 장치가 될 수 있다
외부 모델을 실제 개발업무에 사용하면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것 이상의 정보가 생긴다. 어떤 업무에서 경쟁모델이 더 잘 작동하는지, 개발자가 어떤 기능을 선호하는지, 자사 모델이 어디에서 불편한지 비교할 수 있다.
이런 비교를 벤치마킹이라고 한다. 경쟁사의 제품을 모방한다는 뜻에 한정되지 않고, 성능과 작업방식을 비교해 자신의 개선점을 찾는 과정이다.
다만 경쟁사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과 경쟁사에 핵심 영업정보를 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기업은 데이터 보안과 코드 접근범위, 사용기록과 모델별 할당량을 관리해야 한다. 경쟁협력은 신뢰만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 협력의 경계를 기술적·계약적으로 설계하는 관계다.
협력은 상대방을 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외부 모델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그 모델의 시장확대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직원들이 외부 도구에 익숙해지면 장기적으로 자사 기술에 대한 내부 학습이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코피티션이 유리하려면 협력으로 얻는 이익이 상대에게 넘겨주는 전략적 이익보다 커야 한다. 협력영역을 제한하고 언제든 공급자를 바꿀 수 있게 하며 자사가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자산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구글이 제미나이를 주력 모델로 남겨 두면서 외부 모델을 특화된 용도와 할당량 아래 제공하는 방식은 바로 이런 균형의 문제를 보여 준다. 경쟁사의 기술을 사용하는 행위가 곧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할 부분과 이용할 부분을 나누는 전략일 수 있는 것이다.
핵심 연결 · 보완재 → 상호의존 → 코피티션 → 협력의 경계
경쟁기업은 모든 영역에서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상대의 기술이나 생태계가 자신의 제품가치를 높이는 경우에는 협력할 이유가 생긴다. 다만 협력이 핵심역량과 고객접점을 상대에게 넘기는 수준으로 커지면 장기적인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좋은 협력은 경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협력할 영역과 지켜야 할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가장 좋은 모델 하나보다 여러 기술을 조합하면서도 핵심 주도권을 지키는 능력에서 나올 수 있다
구글이 경쟁사의 AI 모델을 엔지니어에게 허용한 장면을 자사 기술의 승패만으로 읽으면 산업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기업은 오래전부터 직접 생산과 외부조달 사이에서 경계를 움직여 왔고, 기술산업에서는 경쟁기업끼리도 표준과 소프트웨어, 투자와 유통을 통해 협력해 왔다.
포드 리버루지 공장은 많은 단계를 내부에 넣으면 공급과 품질을 강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동시에 거대한 수직통합은 높은 관리비용과 경직성을 만들었고 포드 역시 시간이 지나며 외부 공급자와의 분업을 확대했다. 기업의 규모가 크다고 모든 기능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항상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IBM PC는 반대쪽 위험을 보여 준다. Intel과 Microsoft의 기술을 활용하고 개방형 구조를 선택한 덕분에 IBM은 빠르게 PC 시장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이 성장하면서 운영체제와 프로세서 같은 핵심 모듈을 제공한 기업의 힘도 커졌다. 외부 기술을 활용하는 속도의 이익과 핵심층에서 주도권을 잃을 위험은 동시에 존재한다.
Apple과 Microsoft의 1997년 협력은 경쟁기업도 서로의 존재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상대가 자신의 보완재 시장을 유지해 주거나 시장 전체를 키우는 데 필요하다면 협력이 합리적일 수 있다. 기술산업의 경쟁은 한 줄의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경주보다 여러 층에서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일어나는 생태계에 가깝다.
오늘날 AI 시장에서도 어떤 기업은 모델을 만들고, 어떤 기업은 반도체를 공급하며, 어떤 기업은 클라우드와 업무 플랫폼을 운영한다. 대형 기업들은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래서 경쟁사의 모델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기업이 AI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외부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얼마나 빠르게 생산성을 높이는지, 동시에 데이터와 플랫폼·고객접점·핵심 연구역량을 얼마나 지키는지에 있다.
산업의 역사는 강한 기업이 모든 것을 소유한 기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직접 가져야 하고 무엇은 연결해서 쓰는 편이 나은지 계속 다시 판단하는 기업이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구글의 Claude 활용은 AI 모델의 단순한 성능대결을 넘어 기업의 경계와 산업 생태계,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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